퇴임한 ‘국내 1호 화재감식요원’ 김윤회씨 “불, 밀폐형 공간에서는 순간적으로 확산”
입력 2011-01-11 20:24
“연기 때문에 숨이 막힌 것이 아니라 그 참담함에 가슴이 막혔습니다.”
반평생을 화재조사 업무에 매진했던 김윤회(60·사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연) 안전사고조사TF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를 꼽았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김씨는 대구지방경찰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하철 전동차에서 화재가 났으니 급히 현장으로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서둘러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큰 사고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공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로 192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당일 오후 2시, 방화복과 안전모 등 방화 장비를 갖추고 지하철 역사로 내려간 김씨는 불에 탄 전동차 내부를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혔다고 했다. 화재로 인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터널과 지하철 역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전동차 내부에 가득한 희생자들의 참혹한 모습에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는 “국가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인명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씨는 국과연에서 ‘국내 1호 화재감식요원’으로 불렸다. 1985년 일본 과학경찰연구소 연수시절 배운 사고조사 방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고, 처음으로 화재 현장에서 사고를 조사하고 감정서를 썼기 때문이다. 31년간 현장을 누비며 2000여건의 화재현장을 분석하고 감정했다. 1994년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 굵직한 화재 현장 감정서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김씨는 현대 대형화재 사고의 주 원인은 ‘플래시 오버(flash over)’라고 했다. 플래시 오버란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정시간이 지난 후 대류와 복사현상으로 순식간에 폭발적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을 말한다. 김씨는 “방한 등을 이유로 밀폐형 건축 구조가 많아지고 있는데, 밀폐형 공간에서는 불이 순간적으로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는 발생 5초 후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나 10초 만에 사격장 전체로 불이 번졌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는 불을 피해 도망치던 직원의 뒷머리가 불에 탔을 정도로 번지는 속도가 빨랐다.
지난달 31일, 31년간의 국과연 생활을 마친 김씨는 이달부터 민간 손해사정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는 이곳에서 화재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감정하는 연구소를 개설해 연구와 후진 양성을 함께할 계획이다. 김씨는 “국가기관 수준의 과학적 화재조사 시스템을 민간 영역에 도입해 검증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