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싸고 정부-산업계 이견

입력 2011-01-11 23:19


“도입 준비 연내 마무리” vs “우리만 서두르면 손해”

유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올 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와 싸워야 하는 서민의 시름이 깊어 간다. 상대적으로 값이 싸지만 비효율적인 전기에너지로 난방용 수요가 몰리면서 전기사용량은 계절을 가리지 않게 됐다. 2009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은 1415억 달러로 총 수입액의 32.5%에 이른다.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약속한 기후변화 완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도입 준비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고, 2013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더라도 시기를 몇 년 늦춰 달라고 맞서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산업계의 올해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청와대의 교통정리=“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규제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자 경제성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환경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산업계의 인식을 전환시키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는 사업장이나 건물을 대상으로 할당된 목표보다 더 배출한 사업장은 온실가스를 사들여야 하고, 덜 배출한 사업장은 배출권을 팔도록 하는 제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출권을 사들이는 비용보다 돈이 덜 드는 감축방안과 기술을 강구하도록 기업을 유도한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쉽게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용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기후경제연구실장은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하며 배출권거래제의 이 같은 장점을 강조했다고 10일 전했다. 김 실장은 “원만한 거래를 가능케 할 인프라 구축과 규칙 제정도 앞으로 2년이면 충분하다”며 “배출권거래제 시행은 늦추는 만큼 손해”라고 말했다.

◇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산업계는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목표관리제를 해 보면서 국제동향을 지켜본 뒤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를 신중히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업체별 배출량과 감축 잠재량에 근거한 목표관리제를 내년에 시행하는데 후년부터 배출권거래제까지 하면 이중규제가 된다고 항변한다. 김 실장, 녹색성장위 박천규 국장, 서울대 조홍식 교수 등은 배출권거래제를 미루면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는 기업이 정해진 배출량의 상한을 지키지 못할 때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제재하는 직접 규제의 전형이다. 직접 규제는 집행이 간편하지만 기업이 온실가스를 목표 이하로 감축해도 보상이 없기 때문에 기술개발 인센티브가 없다. 상한선을 넘길 경우 초과 폭이 크든 작든 부과금이 같아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배출권거래제는 여기에 거래기능을 추가시켜 시장기능으로 효율성을 달성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에 의한 감축에 드는 비용(국내총생산 감소)은 직접 규제에 소요되는 비용의 40% 정도에 불과하다. 배출권거래제에 기반을 둔 탄소시장은 연평균 2배 이상 증가했다. 거래금액은 2009년 약 170조원에 이른다. 현재 유럽 중심인 세계 탄소시장이 앞으로 커진다고 볼 때 배출권거래제를 지금 시행할 경우 미국 일본에 앞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된다.

◇산업계의 속사정=대한상공회의소 등 18개 경제·업종별 단체는 지난달 ‘배출권거래제법안에 대한 산업계 의견’을 발표했다. 주요국이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철회하거나 보류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산업계 대부분은 배출권거래제 시행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우선은 돈의 문제다. 목표관리제 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즉 배출량 할당분이 무상으로 주어지지만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면 할당분의 일부나 전부를 경매로 사들여야 한다. 매년 할당분을 초과해 배출할 경우 초과하는 양에 비례해서 배출권을 사들여야 하므로 페널티와 인센티브는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2013∼2015년 할당량 중 90%가 무상이고 10%는 유상(경매)이다. 유상비율은 이후 5년간 대통령령으로 정한 뒤 2020년이 되면 100%로 올라간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한마디로 돈이 걸린 문제”라며 “예상보다 큰 거래비용을 치르게 되는 실무자에게는 목숨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배출량 실적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거나 측정·검증 관련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을 서두르면 할당량과 관련한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고 소송도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망=경원대 김창섭 교수는 “고통분담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산업계는 배출권거래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경매비율 등 배출권거래제의 초기조건을 아무리 느슨하게 해도 산업계는 규제의 칼을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면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조용성 교수는 “선도적 기업은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보고 정부에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런 생각을 가진 기업체 실무진이 기업 오너에게 자유롭게 건의할 수 있겠는가”라며 “역으로 오너의 생각은 적극적인데도 실무진이 지레짐작으로 반대나 소극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지만 시행시기를 놓고는 양분된다. 중앙대 김정인 교수는 “탄소시장 참여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며 “다만 도입시기를 1∼2년 늦추는 양보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김현석 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강희찬 박사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대통령이 1라운드에서는 환경부 손을 들어 줬지만, 6월중 부문별·업종별 감축 할당량 발표와 함께 시작될 2라운드에서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

Key Word 배출권거래제

대기오염물질처럼 이를 배출하는 기업이나 집단뿐 아니라 그 주변의 불특정 다수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그 기업(집단)간의 거래를 통해 줄여나가는 제도를 말한다. 배출권거래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지구 전체, 한 국가, 또는 특정부문이나 산업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총량을 정한 다음 각 국가나 배출주체들마다 일정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권한(배출할당량)을 준다. 그 다음 1년이나 정해진 기간동안 배출량이 할당 한도를 넘는 경우에는 정해진 양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배출주체로부터 배출권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배출권의 가격 및 거래량은 배출권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즉 배출할당량이 많이(감축요구 폭이 적게) 주어지면 배출권 공급이 늘어나 배출권 가격은 떨어지고, 할당량이 적게 주어지면 가격은 올라간다. 이때 전체적으로는 기술개발에 의하든, 생산감축에 의하든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오염물질을 감축할 수 있는 주체부터 감축이 발생함으로써 국가나 집단이 가장 비용효율적으로 오염물질을 줄여나갈 수 있게 된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