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남미發 ‘환율전쟁’ 조짐

입력 2011-01-10 21:13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잠잠한 듯하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새해 들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진앙지는 남미 국가들이다. 브라질은 환율 방어를 위해 각종 통제장치를 마련하고 국제기구에 환율조작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자본 자유화의 모범으로 꼽혔던 칠레마저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화했다.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헤알화의 가치 상승을 막을 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환율 조작 문제를 직접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중국이 환율 문제에서 최악의 가해자”라고 비난한 뒤 “이는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율전쟁”이라고 지적했다. 만테가 장관의 발언은 브라질 등 남미권 국가의 통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브라질 헤알화는 2009년 이후 달러에 비해 35%나 절상됐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주에 핫머니 규제를 위해 시중은행의 달러 매도 포지션 지준율을 높인다고 밝혔다. 앞서 브라질은 지난해 외국인 채권투자에 6%의 세금을 부과한 바 있다.

최근 6개월간 달러에 비해 10% 이상 절상되는 등 페소화 강세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른 칠레도 브라질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칠레 중앙은행은 불간섭주의를 포기하고 120억 달러의 ‘실탄’을 마련해 수출업체를 지원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칠레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2008년 이후 3년 만이다. 콜롬비아는 올 초 “페소화 절상을 막기 위해 매일 2000만 달러를 매입하겠다”고 공언했으며 페루도 솔화 가치가 급등하자 지난해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상했다. 고평가된 통화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자 남미권 국가들이 노골적으로 환율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다.

남미 국가들의 이런 움직임은 벌써부터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을 자극하면서 환율전쟁의 악순환을 부를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연례 실무 회동을 마친 뒤 “올해도 금리, 은행 지준율 및 공개시장 조작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은행 유동성을 조정할 것”이라며 환율전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여기에 터키도 과도한 자본 유입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등 새해부터 자본 유출입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각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조짐을 보이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각국의 통화 정책을 규제할 수 있는 ‘글로벌 룰’을 의제로 삼겠다고 했으나 효과는 미지수라고 FT는 전했다.

고세욱 강준구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