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떨리는 ‘장바구니 물가’… 시장 가기가 무섭다

입력 2011-01-11 01:06

서울 대림동에 사는 주부 김수현(41·여)씨는 9일 오후 작은 수첩과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김씨는 수첩에 ‘우유 두부 검은콩 계란 양파 대파 애호박 씨리얼 휴지 섬유유연제’라고 쇼핑 목록을 적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겨울방학 학원비가 오르면서 살림이 더 빠듯해졌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니 난방비도 걱정이다. 남편이 최근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통신비도 올랐다. 김씨는 식료품 비용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씨는 집 근처 롯데마트에서 쇼핑 목록으로 작성한 품목들에 아이들 간식거리를 조금 더 샀다. 밑반찬으로 콩자반을 할까 했지만 검은콩(서리태) 500g에 1만원이 넘는 것을 보고 수첩에 적혀 있던 콩을 지웠다. LA식 갈비를 사고 싶었지만 오전에 이미 품절돼 대신 백숙용 닭을 4980원에 샀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긴 것은 10여개 남짓한데 6만5480원이 나왔다.

김씨는 “물가 무서워서 마트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고 충동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데도 한 달에 먹거리 비용만 50만원 이상 쓴다”며 “벌써 이런데 설이 가까워지면 얼마나 오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흔들리고 있다. 농수산물을 중심으로 물가가 오르고, 유가 상승 등 영향으로 공산품 가격도 뛰고 있다.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장바구니는 가벼워졌고, 장을 보는 주부의 마음은 무거워지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정순영(56·여)씨는 “마트를 한 바퀴 돌았지만 이것(요구르트 10개들이 한 묶음) 하나 겨우 골랐다”며 “계란 한 판이 1만원이 넘고 손바닥만 한 애호박이 2000원인데 뭔들 쉽게 고르겠느냐”고 한숨지었다.

대형마트에 손님은 북적였지만 카트 한가득 장을 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두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최현순(52·여)씨는 “연말에는 행사 상품 사가는 손님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올 초에는 절반쯤으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불안한 소비자물가는 설이 가까워 오면서 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도매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3% 오르면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년 동월대비 상승률은 2008년 12월의 5.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도매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 물가 오름폭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농림수산품이 지난해 12월보다 21.1% 오르며 9월(29.6%)부터 4개월 연속 20%대의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낮았던 공산품이 6.0%로 2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품목별로는 배추가 무려 210.4% 폭등했으며 무(170.8%), 마늘(131.3%), 고등어(77.3%) 등도 장바구니를 무겁게 한 대표적 품목들이다. 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석유제품(11.3%)은 6개월 만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