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불가” 회오리] “여론 흐름 최악” 지도부가 앞장… 레임덕 시작?

입력 2011-01-10 21:37


전격적이었다. 안상수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이를 청와대에 통보하자 핵심 당직자는 “참고할 만한 전례도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지난해 총리 후보자 지명 3주 만에 낙마했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 때도 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당내에서 ‘불가론’이 확산됐지만 지도부가 자진사퇴 요구를 공개적으로 청와대에 통보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감사원장 후보자의 재산 형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감지한 안 대표는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작심한 듯 정 후보자 문제를 안건에 올렸다.

비공개 회의에서 안 대표는 최고위원뿐 아니라 해외출장 중인 김무성 원내대표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결과는 전원이 부적격 의견을 냈다. 이에 안 대표는 정 후보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게 정부와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원희룡 사무총장을 통해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통보’할 것을 지시했다.

안 대표의 전격적이고 이례적인 통보 배경은 뭘까. 원 사무총장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고위원들은 “구제역, 물가 등 일도 많은데 정 후보자 문제로 (정권이) 흔들리면 곤란하니 빨리 정리하자는 의미”라고 입을 모았다. 이른바 ‘김태호 학습효과’로 어차피 사퇴가 정해진 것이라면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버티는 것보다 빨리 정리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편으론 민주당 등 야당의 공세가 정 후보자 개인뿐 아니라 한나라당에까지 좁혀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의도도 있다. 이미 민주당이 한나라당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이 정 후보자와 가까운 인사라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 상황인 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당시 한나라당이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인수위 출신이라는 점을 문제 삼아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 지도부는 정 후보자 역시 현 정부 인수위 출신인 만큼 당시 표결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당·청 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안 대표의 신년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더 이상 청와대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잇단 설화로 구설에 올라 지도력 회복이 절실했던 안 대표가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고 정 후보자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 같은 움직임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 일부 의원들은 이번 사태를 “레임덕의 시작” 또는 “청와대가 레임덕을 자초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지도부가 ‘당 중심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당·청 관계 조기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특히 당의 일방 통보에 청와대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원희목 대표비서실장은 “청와대와 각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정 후보자 개인에게 거취를 표명하라고 한 것”이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도 보였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