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페이지 수사기록·두꺼운 법전 물렀거라!… ‘태블릿PC 변호’ 법정 新 풍속도
입력 2011-01-10 18:18
지난 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판이 열렸던 서울중앙지법 510호 법정. 한 전 총리 변호인인 조광희 김기중 김진 백승헌 변호사는 서류가방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얇은 물건을 꺼내들었다.
두꺼운 서류뭉치 대신 이들이 법정에 갖고 온 것은 태블릿PC였다. 여기엔 한 전 총리와 관련된 검찰 수사기록 4000여쪽이 모두 PDF파일로 변환돼 저장돼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관련기록을 검토하면서 의견을 제시하는 변호인단의 움직임은 방청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태블릿PC 변호’는 정보기술(IT) 전문 김기중 변호사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이날 재판 진행과 관련된 형사소송법 해석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자 검찰이 두꺼운 법전을 뒤적이는 동안 변호인단은 곧바로 관련 규정을 검색해 재판장에게 제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은 10일 “두꺼운 서류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법정, 사무실, 집에서도 모든 자료를 볼 수 있고 변호인단 안에서 정보공유도 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태블릿PC에는 형사소송법과 각종 관련 법조항이 모두 파일로 저장돼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법정에서 변호인들이 태블릿PC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 처음은 아니다. 법원 관계자는 “법정에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PC를 갖고 오는 변호인이 더러 있다”며 “아무래도 여러 명이 변호인단을 구성하면 역할을 분담해 한 사람은 정보를 검색하는 등 변호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종이를 없애고 소송절차를 전자화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실현된 상태다. 지난해 특허법원을 시작으로 전자재판이 일부 도입됐고, 오는 5월부터는 민사소송이 전자재판으로 진행된다.
내년에는 행정·가사 소송도 전자재판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은 두꺼운 서류뭉치를 법원에 제출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11월 처음부터 끝까지 종이 없는 전자재판으로 200여일 만에 대법원 판결까지 난 사례가 처음 등장했다.
다만 형사재판은 전자재판 도입이 더디다. 형벌과 관련된 형사재판은 증거채택에 신중해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까지 증거능력을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 보완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태블릿PC에 관련 서류를 저장해 사용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고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트북 컴퓨터도 앞으로 재판에서 더 많이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안의근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