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공짜 점심에는 청구서 따른다
입력 2011-01-10 18:09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서울시 의회와 대립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자신의 블로그에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시리즈의 행진을 국민의 힘으로 막아주십시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봐서 서울시장 입장이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가의 울분인 듯한 모양새다.
오 시장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그 때문에 일본의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견강부회다. 일본의 재정악화는 복지 지출이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기(헤이세이불황)에 벌어진 과도한 재정투입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짜 상품권 살포, 양육수당 지원, 소비 촉진을 위한 서민 정액지원금 등의 비용이 수 조엔에 이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1000조엔에 이르는 일본의 나랏빚에 비하면 소액에 불과하다. 오히려 각종 경기부양책을 앞세워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추진했던 정책실패가 더 문제다.
복지는 지불능력의 함수다
2009년 9월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이 토건공화국을 지양하겠다고 하면서도 아동수당을 늘린 데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비용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복지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재정 조달 가능성이다. 오 시장의 일갈도 이 대목을 강조한 것이었을 터다.
지난해부터 무상급식이 정치권을 달구더니 이제 전선은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대학등록금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무상 복지시리즈’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복지가 경제의 함수라는 데 있다. 지불능력도 없이 복지서비스만을 앞세울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럼에도 무상 복지시리즈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자본주의는 비약적인 성과를 냈고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에서도 연부역강함이 확인된 지금 국민들도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본다면 문제 제기 자체로서도 의미가 크다.
여기엔 물론 조건이 따른다. 바로 국민적 합의다. 복지서비스는 수혜자에게 공짜가 될지언정 누군가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장 지불 의무를 정부가 진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금과 사회보장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국민부담률을 따져 보면 한국은 2009년 2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칠레 미국 터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다. OECD 평균인 33.7%, 북유럽 각국의 40%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국민적 합의부터 유도해야
북유럽의 고복지 국가들이 향유하는 높은 연금급여 수준, 의료·교육 등의 무상 복지서비스를 추구하겠다면 국민부담률을 지금보다 대폭 올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무상 복지시리즈를 앞세우려면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충분히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더 많이 내고 더 좋은 복지서비스를 받겠다는 국민적 합의 없이는 무상 복지시리즈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공짜 점심은 환영이지만 나중에 날아오는 청구서는 안 받겠다고 한다면 국민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적정 복지서비스 수준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의 정서는 덜 내고 많이 받기를 원한다. 예컨대 국민연금 급여대체율이 너무 낮다며 반발하는 이들도 보험료율 인상에는 반대한다.
국민부담률 수준을 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복지서비스를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무상 복지서비스가 당장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것부터, 가장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는 방안부터 추진하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어차피 고령사회를 앞두고 복지서비스 수준을 높여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