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첫 여성잡지 ‘신여성’ 전신인 ‘부인’… 이상경 교수 ‘근대서지’ 2호에 게재
입력 2011-01-10 17:40
일제시대 엘리트 여성들을 상대로 발간됐던 ‘신여성’의 전신 ‘부인(婦人·사진)’지의 존재가 ‘근대서지’ 2호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상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근대 여성학 연구의 필수자료라고 할 수 있는 여성잡지들의 변천 과정을 연구해 쓴 글 ‘부인에서 신여성까지’가 이번 호에 게재됐다.
‘부인’ 지는 1922년 6월 간행된 창간호의 존재 정도만 알려져 왔으나, 추가 연구를 통해 23년 8월까지 14호가 나온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부인’의 뒤를 이은 ‘신여성’은 그 해 9월부터 26년 10월까지 총 31권을 냈다가 휴간된 뒤 이후 복간됐다. ‘신여성’의 정확한 폐간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부인’은 애초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반영하는 바람에, 잡지의 주된 구독자인 신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아무리 지식 없는 부인이라도 다 알아보게 재미있고도 유익하게 만듭니다.
이 잡지를 보시면 첫째 부인네로의 할 만한 도리를 알으시게 되며, 둘째 남편을 잘 섬기며, 셋째 살림살이를 잘하며, 넷째 아이들을 잘 기르며, 그밖에 손님 접대하는 것이라든지 위생이라든지 무엇이든지 다 잘하게 됩니다.” 주요 편집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달성이 쓴 글이다.
현희운의 것으로 추정되는 창간사는 이렇다. “아내로서는 그 남편을 절조있게 따르며, 며느리로서는 그 시부모를 효도로써 섬기고 주부로서는 그 가정을 규모 있게 다스리며 (중략) 우리의 이 조그마한 잡지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배움이 있고 가르침이 있어 한 걸음이라도 문명한 길을 나아가게 되면 이 곧 우리의 크게 바라는 바이올시다.”
이런 사상이 신여성들의 반발을 사는 바람에 ‘부인’은 점차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부한 현모양처 사상은 10여년 전 나혜석과 김일엽이 이미 거부한 바 있었다.
당시의 독자가 ‘부인’지에 보낸 항의 편지는 식민지 조선에 휘몰아친 바람을 잘 보여 준다. “주간 선생님? ‘부인’을 좀 높였으면 어떨까요. 정도가 좀 낮은 듯해요. 너무 낮으면 독자들이 시원하게 안 여겨요. 아닌 게 아니라 학교 출신인 여자들은 정도가 낮다고 빙긋빙긋해요.”
시대에 따라가기 위해 ‘부인’은 ‘부인기자’들을 뽑기도 했고, 내용에도 서서히 변화를 주었다. 창간 1주년 기념호에서는 나혜석이 자신의 인생 경험을 서술하고, 후배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자존을 가질 것을 당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잡지 ‘부인’은 결국, 신시대 여성들의 요구에 좀 더 부합하는 ‘신여성’으로 대체되고 만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