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는 무엇인가

입력 2011-01-10 17:50


(27) 행진하는 교회

성서에서 보면 교회의 가장 진실하고 순전한 모습은 행진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구약성서에는 예배하는 곳이 성막이다. 곧 텐트이다. 언제나 말아서 갖고 다른 곳에 가서 펴고 설치할 수 있다. 그리고 법궤 역시 긴 손잡이가 길게 붙어 있어서 언제나 들고 다니도록 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언제나 그 백성들보다 항상 앞서가시는 분이었다. 정착하신 곳이 없는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셨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그 어느 한 곳에도 여호와는 영주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교회의 참모습이 하나 정확하게 드러난다. 교회의 특징은 움직이고 있는 기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 움직이고 행진하고 있는 교회 이미지는 더욱 적절한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격변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상 이때와 버금할 만한 시대가 없을 만큼 우리는 모든 것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격류 속에서 살고 있다. 기존 가치들이 도전받고 있다. 혁명적 불길이 도처에서 강한 인화성을 갖고 세상을 동요시키고 있다. 수없는 조직과 단체들, NGO(비정부기구)들이 각각 이해관계를 갖고 사회를 흔들고 있다.

한국도 길지 않은 세월에 세계적인 국가로 부상하면서 엄청난 속도의 사회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가 이들과 떨어져 벽지에 숨을 수는 없다. 교회도 그 속에서 함께 걷고 행진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휘젓고 다닐 때, 고향을 빼앗기고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종교의 최고조에 이르렀다. 가나안 정착 후에는 바알 곧 정착의 우상에게 여러 번 굴복하고 유혹됐다. 바알은 정착의 신이요 안주의 우상이었다. 정착의 신, 안주의 신이 우상인 것이다.

다른 하나, 교회의 가장 성서적 이미지는 길을 걷는 이들의 친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이들은 한 공동체로서 길을 행진해 가는 것이다. 지리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및 산업 등 곧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한 공동체가 된 것은 먼 길을 따라가서 만민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사명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구원만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는 동안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신앙을 충전하는 영적 부흥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교회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힘을 채웠으면 다시 떠나야 한다.

우리 교회는 이제 온 세계를 향해 행진하여 나가야 한다. 현대교회의 사명은 선교의 길에 순례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요하고 안전한 집에 머물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져야 할 곳은 어디든 찾아가도록 하신다. 교회는 행진할 때 그 본질에 가장 충실하게 된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