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로뎀나무 아래 있을 때에도

입력 2011-01-10 17:50


열왕기상 19장 1~8절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때 이스라엘 왕은 아합입니다. 그의 아내는 이세벨입니다. 아합 내외는 엘리야를 미워해 그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숨어 지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마주섰습니다. 제단을 차려놓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대결입니다.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엘리야의 간구에 여호와의 불이 내렸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다 멸했습니다.



이 소식을 이세벨이 들었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전했습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2절)

이 전갈을 받은 엘리야가 보인 반응은 뜻밖입니다. 그는 국경을 넘어 남쪽 유다로 도망쳤습니다. 광야로 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죽음을 구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바로 며칠 전 갈멜산에서 그가 했던 기도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갈멜산에서 불을 내릴 때의 엘리야와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이 갑작스런 엘리야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그 용감하던 엘리야는 어디가고 이렇게 초라하고 왜소한 엘리야만 남았는지, 보통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선지자가 보인 이런 급격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만약 우리가 그때 엘리야 곁에 있었다면 실망하고 그 곁을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갈멜산의 엘리야이기만 하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우리는 갈멜산의 엘리야인 동시에 로뎀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입니다. 이 둘이 다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갈멜산 위에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 있기도 합니다. 아합 왕 앞에서도, 이방 선지자 850명 앞에서도 담대한 우리가 때로는 이세벨의 한마디에 로뎀나무 아래 가서 앉습니다.

평생을 갈멜산 위의 엘리야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엘리야는 갈멜산 위의 엘리야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보니 엘리야 하면 갈멜산의 엘리야만 생각합니다. 엘리야는 늘 갈멜산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 엘리야도 그렇고 남 엘리야도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 앞에 어느 날 로뎀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가 나타나면 우리는 크게 당황합니다. 실망합니다. 나 엘리야에게도, 남 엘리야에게도.

하나님은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서 죽여 달라고 떼를 쓰다 잠이 든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들려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7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40일 이상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 후에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시며 가서 다시 사역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을 세우고 선지자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힘차게 다시 선지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있을 때도, 로뎀나무 아래 있을 때도 하나님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조현삼 목사(서울 광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