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 시각장애인 사역 은퇴 방희철 목사… 성도 2명 출발 20년후엔 150여명 확대
입력 2011-01-10 17:41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대교구 시각교구의 첫 시각장애인 목회자로 20년 사역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29일 일선에서 물러난 방희철(69) 목사는 “시각장애인 성도 대부분 긍정적인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사는 성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소회를 밝혔다.
방 목사는 1990년 12월 교회 시각장애인 부서를 개척해 장애인 선교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은 외출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스스로 절망해 마음 문을 닫은 사람들이 많다. 목회 초기엔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 주된 사역이었다.
방 목사는 성도들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시각장애인용 흰색지팡이를 짚고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서울 신림동과 면목동, 망원동 등 언덕 골목을 다니며 예배의 자리로 사람들을 초청했다. 눈보라 치는 날이면 비탈길에 넘어지기 일쑤였고 고무줄을 구두에 동여맨 채 장애우들을 만났다. 3년을 한결같이 일하면서 2명이었던 시각장애인 성도가 차츰 늘기 시작했다. 94년 교회에 정식으로 시각교구가 생겼고 최근엔 150명까지 늘어났다.
“시각장애인들은 선천성 장애보다 후천성 장애가 많습니다. 중도 실명이라는 충격적 상황에서 충분한 치료와 재활 없이 목전에 닥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더구나 마음의 상처가 커서 상대방을 수용하지 못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위로와 희망이 필요했다. 20년간 방 목사가 가장 많이 했던 설교는 앞을 향해 가라는 내용이었다. 뒤돌아보지 말자,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설교했다.
30대 중반부터 시신경 위축 등 합병증으로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방 목사는 40대 초반 실명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에게 실명은 ‘사형선고’이자 절망 자체였다. 처음엔 실명을 인정하지 못해 유명하다는 안과병원을 다 다니고 용하다는 민간요법을 다 써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희망 한 조각도 만져지지 않았을 때 찾아간 곳이 경기도 파주의 오산리금식기도원이었다. 닷새를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용기를 얻은 그는 아내 오성인(64) 사모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성경학교 과정을 시작했고 집에서만 파묻혀 지내다 재활원에 다니며 점자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한영타자, 보행, 생활훈련을 받았고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석사 논문도 썼다.
방 목사는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 사회복지 환경 개선 등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장애가 거의 없는 편”이라며 “주위 가족이나 봉사자들은 이들이 현실을 수긍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면했다.
그는 아내 오 사모의 동행을 예로 들며 시각장애인 선교에는 자원봉사자 역할도 지대하다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 사역은 일대일 봉사자 도움 없이는 어렵습니다. 특히 발달장애나 언어장애, 자폐아 등 중복장애 어린이를 위해서는 궂은일을 마다않고 봉사할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신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