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84)

입력 2011-01-10 09:25

‘칼질’에서 ‘숟가락. 젓가락질’로

구제역으로 2200여 농가에서 소 5만여 마리, 돼지 40만여 마리 등 총 47만 마리가 살처분·매몰됐다고 합니다. 이는 전국 가축의 4% 수준이라네요.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 재앙이 몰려올 것 같아서 정부에서는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구제역이 ‘심각단계’라고 했다고 합니다.

1347년부터 흑사병은 이탈리아, 에스파냐,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지로 퍼졌습니다. 사타구니, 겨드랑이, 목 따위에 부어오르는 검은 종기인 선페스트(흑사병)은 하루에 4㎞씩 번져가서 1차 유행이 끝났을 무렵엔 유럽에서 약 25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1348년, 파리의과대학은 역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곧 [오피니옹]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역병의 원인은 토성, 목성, 화성이 겹치는 3중합이 일어나면 질병을 일으키는 증기가 땅과 물에서 떠올라 공기를 오염시켰다고 했습니다. 감염되기 쉬운 사람들이 해로운 공기를 마셨고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3중합의 증기가 발생되는 공중목욕탕이 가장 먼저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0여 년 동안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죽기 싫으면 부디 목욕탕과 목욕을 피하시오.”

역병이 생기기 이전의 약 500여 년 동안 공중목욕탕과 물은 사람들에게 편안함, 즐거움, 교제, 유혹 그리고 청결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역병 이후로부터 200여 년 동안 유럽은 가장 불결한 시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1538년에는 왕의 명령으로 프랑스의 모든 목욕탕을 폐쇄했습니다. 그렇게 목욕탕 없이, 목욕을 하지 않으면서 시작한 문화가 아마포의 셔츠, 진한 회벽색 화장술, 향수, 하이힐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을 가급적 피하려고 하지만, 이렇게 구제역이 창궐하다가 마침내 재앙이 되어, ‘재앙대책본부’가 설치되고, 세상의 모든 고깃집을 폐쇄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하게 동물의 사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주를 조율하고 있는 어떤 행성의 기묘한 역학적 관계에 의해서 생명 리듬이 붕괴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전국의 수많은 도살장에서 그동안 목숨을 잃고 죽어간 짐승들의 피가 통곡하며 부르짖는 호소가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탐욕과 욕망이 낳은 재앙이지요. 이 참에 우리들의 식문화(食文化)를 ‘칼질’에서 ‘젓가락. 숟가락질’로 극적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니라.”(스가랴 14:15)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