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대표회장 당선자 길자연 목사 "한기총을 이 시대의 온도조절기로 만들 것"

입력 2011-01-09 17:04


[미션라이프] 지난해 12월 치열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전에서 승리한 길자연(왕성교회) 목사는 ‘선거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이북 출신으로 8년여 한의사로 재직하다가 신학교에 진학,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1990년대 중반 늦은 나이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정치에 뛰어들어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매번 승리를 쟁취해왔다. 그랬던 그도 이번 한기총 선거과정이 녹록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길 목사는 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기총 일부 인사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초법적 행동으로 인해 악조건 속에서 이번 선거를 치러야했기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위장까지 안 좋아졌다”면서 “하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선거 당일까지 자칫 후보자격 박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길 목사는 “대신 페어플레이가 아닌 편법이 난무하는 선거를 더 이상 한기총에서 찾아볼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며 자신의 호인 덕연(德延)처럼 덕을 쌓아가는 사역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과 적잖은 마찰을 빚었던 인사들과도 함께 더 나은 미래 방안을 도출해나갈 것이라며 탕평책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한기총의 회원 교단들과 단체들은 서로의 신학적 입장이 다소 다른 게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 하나의 기관이 됐습니다. 창립 22주년을 맞이하는 기관답게 권모술수나 부끄러운 행동이 발을 못 붙이도록 자정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겁니다. 공정성, 효율성, 투명성, 합리성을 기반으로 최적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촘촘히, 세밀하게 실천해나갈 것입니다.”

길 목사는 토끼의 큰 귀를 예로 들어 앞으로 추진할 일을 설명했다. “토끼의 큰 귀는 잘 듣기 위한 게 아닙니다. 청각에서는 토끼가 개보다 못합니다. 토끼의 큰 귀는 체온조절을 하는 데 유용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토끼의 큰 귀를 경청을 더 잘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저는 이처럼 잘못된 선입견을 바꿔나가겠습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오해, 이로 인한 불신과 대립을 해소시켜 나갈 겁니다. 아울러 한기총을 이 시대의 온도조절기가 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한기총을 강하면서도 따뜻한 복음 선포의 디딤돌이자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논리, 철학으로 무장하는 동시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기독교 연합운동의 실체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다. 다수 의견의 온도를 기록하는 온도계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의 온도를 바꾸고 조절하는 온도계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거전에 내건 ‘공약(公約)’을 임기 내 완성하겠다는 지나친 의욕보다는 기초석을 반듯하게 놓아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는 것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뜻)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한기총의 정관 등을 손질해 분명한 원칙 속에서 충돌과 반목을 종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통일기금 조성 운동을 통해 통일 한국을 대비하는 성숙한 기독교의 모습을 널리 각인시키고 싶다고 했다. 기독사학법 문제 해결, 이단 사이비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 불합리한 현행 사회적 제도의 개선운동 등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한기총 회관 건립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임기 내 한기총 회관 건립기금을 신속히 조성하고 대지를 확보해 명실상부한 세계교회 중심기관으로 만들 것입니다.”

길 목사는 한기총 세대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젊은 목회자 그룹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온전히 연합기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화를 통한 덕치를 통해 기존의 인원들과 미래 세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한기총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한기총에서 권위주의를 거둬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표회장실을 회의실로 바꾸고 대표회장 직무실을 총무실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총무는 기존의 사무총장실을 사용토록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무총장이 유고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사무총장직제가 정말 필요한지 따져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길 목사는 ‘정교유착’은 결코 없을 것이지만 다변화사회 속에서 교회가 선지자적,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에 ‘불가근불가원’ 원칙 속에서 지혜롭게 처신해나가면서 추락한 한기총 위상을 회복시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과거 대표회장 재임시절엔 열정과 의욕이 앞섰습니다. 당시는 국가변혁기였기 때문에 기존 질서가 부정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어요. 저는 좌파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파나 좌파 모두 기독교 입장에서는 전도의 대상입니다. 온 국민들이 불안스럽게 정부와 이 사회를 쳐다보지 않도록 교회는 나라와 민족에 기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기총은 더 낮은 대로 임할 겁니다. 약자를 돕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가 교회의 본질을 제시할 것입니다.”

길 목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대규모 집회는 지양하되 국민과 성도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또 한기총 조직 축소보다는 기존 조직의 활성화에 더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한 협의과정 없이 대표회장이나 임원들의 밀어붙이기식 결의나 집행은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모든 분들이 의욕을 갖고 연합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꿀 겁니다. 의사결정과정에서 각 교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킬 것입니다.”

논란이 됐던 처치 스테이 공약과 관련, 길 목사는 한국교회가 처치 스테이로 정부의 재정을 지원받겠다는 식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처치 스테이는 템플스테이에 대응하기 위한 단순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처치 스테이는 기독인이나 비기독인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기 위한 문화적 접근입니다. 일종의 ‘기독교 신앙의 문화화’라고 할 수 있죠. 역사성 있는 교회나 지역, 기도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박3일 또는 4박5일 기도원 등에서 성경, 우리의 기독교 역사 및 영성 등에 대한 선(先) 이해를 갖게 한 뒤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일종의 처치 스테이입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우리 문화 속에 뿌리내린 기독교를 느끼게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길 목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2013년 부산총회와 관련, “대회 자체를 방해하는 건 한국 교회 전체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총회를 유치한 교단 중 하나인 예장 통합 인사들도 공감하듯이 WCC가 혼합주의 성격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승화시켜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기총 내 WCC대책위원회가 특별위원회로 구성될 것이지만 이는 반대를 위한 게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2014년 총회에 대해선 “제프 터니클리프 WEA 대표와 핫라인을 구축, WEA 내부 상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것”이라며 “만일 우리측이 받아들이기 곤란한 문제 인사가 있다면 WEA측에 우리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대회가 잘 준비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길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과거와 달리 사회적 요구가 다양해져 두렵고 떨린다”면서 “하나님보다 더 앞서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그동안 ‘기도목회’를 해온 것처럼 모든 일에 기도를 최우선할 것”이라고 했다. 또 “리더란 자기 역량을 남을 위해 사용할 줄 알고 상대가 누구이든 품고 자기의 은사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며 “예측가능하면서도 투명한 리더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결코 거스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