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1-09 18:03


(28) ‘믿으라’

내가 지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섬기는 교회를 생각하면 참 고맙다. 목사님이 참 좋은 분이다. 외모는 지성적이고 날카로운데, 풍기는 분위기는 따뜻하다. 학자적인 지성이 많은 분인데 어느 독일 목사님을 만나면서 영적 감성이 열리셨단다. 설교하면서 자주 목사님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본다. 교회는 담임목사를 닮아가는 것 같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한국에서 우리 교회에 집회하러 오신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에 대해 말씀하셨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이분을 아는데, 천생 학자이신 이분이 목회를 하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고, 더구나 이렇게 열정과 눈물과 사랑이 가득하게 목회하실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둘째 출산이 다가온다. 어느 날인가 나와 아내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어둠이 깔리듯 두려움이 덮쳐왔다. 목사님에게 전화했다. 목사님이 우리 상황은 다 알고 계신다. 목사님은 프랑크푸르트의 오래된 바울교회 앞 광장의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커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목사님이 물으셨다. “집사님, 특별히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죠? 아이 출산 때문에 그런 거지요? 다른 상황이 새로 생긴 건 아니지요?” “예.” 우리 내외가 대답했다. 카페에서 나가자고 하시더니 바울교회로 가셨다.

교회당 안에 들어가 앉았다. 바울교회 전에 여기에 바퓌써교회가 있었다고 하신다. 이 자리에 교회가 존재하면서 있었던 몇 가지 얘기를 들었다. 교회의 경건한 분위기가 그저 건축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곳 신앙 공동체에서 살다 가신 분들의 거룩한 헌신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란히 앉아 우리를 쳐다보며 얘기하시던 목사님이 교회당 전면 파이프오르간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말을 이으신다.

“집사님, 신앙은 그저 맡기는 거예요. 다 맡기는 거지요. 다른 말로 항복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요. 이 교회당과 이곳의 신앙 공동체에서 살다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살면서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았을 거예요. 개인이나 가정 일, 이 도시나 독일 민족 전체와 관련된 일도 많았을 겁니다. 전쟁 중에 이곳에 와서 기도한 사람도 많았겠지요, 전염병이 돌 때도 그랬겠고…. 또는 교권을 차지하려고 싸우던 사람들이 저기 앞 강단에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을 거예요. 그러나 다 지나갔어요! 우리는 그저 일정한 시간 여기 있을 뿐이에요. 신앙은 사람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그걸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지요. 그러면 평화가 와요. 학자로 살고 싶은 저를 하나님은 목회자로 살게 하셨어요. 제 개인 인생 여정에서는 아주 커다란 변화였지요. 집사님, 하나님이 집사님 내외의 상황을 아셔요.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집사님네 둘째가 장애 없이 태어나기를 말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세요. 그러나 주님께 맡기세요….”

목사님 말씀이 좀 더 이어졌다.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예배당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누군가 연습하는 모양이다. 하늘 아버지께 올라가는 기도처럼 오르간 소리는 높고 둥근 교회 천장 가운데로 올라가고, 주님이 내리시는 은혜처럼 거기에서 다시 둥글게 돌면서 내려온다. 오늘 아침의 마가복음 묵상,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이 이미 모든 걸 하늘 아버지께 맡기신 게 생각났다. 예루살렘의 셋째 날 주님은 이런 가르침을 주셨다. “믿으라!”(막 11:24).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