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속수무책] 정부 대책만 믿다 큰코…농민 스스로 ‘그물망 방역’

입력 2011-01-07 21:54

구제역이 통제불능 사태다. 발병 40일째인 7일 구제역 발생지는 6개 시·도 47개 시·군으로 늘었다. 이미 3096개 농장의 소와 돼지 107만5015마리가 살처분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축의 70∼80%가 매몰돼 축산업이 붕괴 지경에 이르렀다.

방역 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구제역 확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농가 스스로 방역활동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축산업 붕괴된 경기도 김포

김포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 21일, 월곶면 갈산리 한 돼지농장에서다. 그러나 구제역은 불과 1주일 만에 인근 통진면과 하성면, 대곶면 등 가축 농장이 몰려 있는 곳이면 거의 예외 없이 퍼졌다. 결국 94개 농가 우제류 6만164마리가 살처분 매몰됐다. 이 지역 전체 가축 수 8만477마리의 74.8%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실상 김포의 축산업이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이한 판단과 철저하지 못한 방역으로 발생한 피해는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방역 당국이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방어선은 줄줄이 뚫렸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한파를 등에 업고 제주와 호남, 경남을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방역 당국은 구제역이 발생한 지 40일이나 지난 시점에도 구제역이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됐는지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살아있는 가축의 시·도 간 이동을 23일부터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가 하루 만인 24일 이를 해제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때문에 구제역이 발생한 충남 당진군에서 새끼돼지를 반입해 사육한 전북지역에는 구제역이 확산될 것이라는 공포가 드리워졌다.

당국은 서둘러 진안의 농가 9500마리와 김제 농가 2500마리 등 모두 1만2000마리를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했다. 그러나 7일 돼지 혈청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결국 당국이 우왕좌왕한 사이 애꿎은 돼지들만 이유 없는 떼죽음을 당했다.

#충북 단양 한 돼지농장

“대통령이 와도 농장 입구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준비된 작업복과 속옷을 갈아입어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축산전문기업 선진이 운영하는 충북 단양GGP 농장은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다. 휴대전화는 아예 반입할 수 없다. 직원들의 개인 소지품도 자외선 소독 시설에서 24시간 소독해야 농장 안 숙소로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세균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외부 행사에 참석한 직원은 2일간, 해외농장 방문 시에는 7일간 농장 출입이 금지된다. 이 농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10여명은 지난 6일 인접한 음성군에서 돼지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오자 3주일치 먹을 쌀과 반찬 등을 챙겨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 농장은 최근 13년간 단 한번의 방역 사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농장의 경우처럼 최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방역활동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방역활동을 정부에 기대기보다 농민들 스스로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을 줄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충남 홍성군 금마면 봉서마을 주민들은 7일 마을 입구와 도로변 등 2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자체 방역에 나섰다. 주민들은 컨테이너 박스로 이뤄진 초소에 동력이동식 소독기와 소독통, 온풍기 등을 설치해 교대근무를 서고 있다.

또 결성면 결성농협은 지난 6일부터 직원들이 교대로 마을을 순회하며 자체 소독작업을 진행 중이며, 서산시 고북면 용암1·2리 축산농가 16가구는 지난 5일부터 자체 방역단을 조직해 진출입 차량에 대한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황일송 기자, 홍성=정재학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