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타는 금미 305호] “수억원 협상금 없어 발만 동동 대출마저 거부한 정부에 배신감”

입력 2011-01-07 21:54

지난해 10월 9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게잡이 어선 금미305호(241t)가 7일로 피랍 91일째를 맞았다. 선주 겸 선장 김대근(55)씨 등 인질 43명의 석방을 위한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지만 수억원의 몸값을 마련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협상을 진행해온 선원 공급 업체와 피랍자 가족들은 최근 외교통상부에 “몸값을 낼 수 있게 대출이라도 해 달라”며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금미305호에 선원을 공급하는 대리점주 김모(59)씨는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지 브로커를 통한 협상에서 해적들이 당초 요구하던 몸값 600만 달러를 수십만 달러로 낮췄다. 절반 정도는 내가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하려 하는데, 나머지 절반이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에 협상금을 절반만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고, 이후 대출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마저 안 된다고 했다”며 “선원들의 안전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대근 선장은 이미 1억5000만원 은행 대출이 있어 가족들도 협상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김 선장의 아내 이모씨는 “외교통상부에 제발 대출이라도 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외면하는 것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남편이 당뇨병을 앓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김 선장은 이달 들어 네 차례 대리점주 김씨와 연결된 전화 통화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김씨는 “정부가 이렇게 국민을 외면할 수 있느냐, 2년 전에 스웨덴 선박이 피랍됐을 때는 스웨덴 정부가 협상금을 지원해 풀려났다는데 우리나라는 뭐 하는 거냐는 김 선장의 호소를 들었다”며 “그에게 정부가 협상금 대출을 거절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미305호는 지난해 10월 9일 오전 6시45분쯤 케냐 라무 앞바다에서 피랍됐다. 협상 과정에서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해적들은 지난해 11월 한 달간 금미305호에 소형 쾌속정을 싣고 선원 10여명을 태운 채 바다로 나가 원양어선을 가장, 해적 활동을 했다. 나머지 선원은 해적 본거지인 소말리아 하라데레 모처에 감금한 상태였다. 해적들은 다른 선박을 납치하는 데 실패하자 지난해 11월 말부터 하라데레항에서 약 3㎞ 떨어진 해상에 금미305호를 정박시켜 놓고 있다. 인질은 김 선장 등 한국인 2명과 조선족 2명, 케냐 선원 39명이다.

해적들은 지난달부터 “협상금을 내지 않으면 선원들을 해적으로 활용하겠다. 금미305호도 해적선으로 개조해 이용하겠다”며 대리점주 김씨를 협박하고 있다.

김씨는 “김 선장이 매일 일기를 쓰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협상 금액을 대폭 낮춰 큰돈이 아닌데도 대출 요청을 거절하니 이젠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외교부는 해적과는 협상하지 않으며 협상금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협상금 대출 문제와 관련해 “선주가 선박을 담보로 이미 농협에서 1억원 넘게 대출받은 상태다. 과거에 감척보상(낡은 배를 폐선하는 대가로 받는 보상금)을 받아놓고 선박을 폐선하지 않았고, 국내에서 원양업 허가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출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