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감성으로 읽는 푸슈킨·레르몬토프… 근대서지, 백석 번역시 167편 발굴

입력 2011-01-07 17:48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1912∼95·사진)이 번역한 외국시가 대량 발굴돼 공개됐다.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가 발간하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제2호는 백석이 주요 번역자로 참여한 공역시집인 ‘뿌슈낀 선집 1-시편’(조쏘출판사·1955), ‘레르몬또브 시선집’(조쏘출판사·1956), ‘이싸꼽스끼 시초’(연변교육출판사·1954), 터키 시인인 ‘나짐 히크메트 시선집’(국립출판사·1956), ‘니꼴라이 찌호노브 시선집’(조쏘출판사·1957), ‘드미뜨리 굴리아 시집’(조쏘출판사·1957) 등 6권에서 백석이 직접 번역한 시를 뽑아 ‘백석 번역시 선집’이라는 제목으로 전재했다. 러시아어를 잘했던 것으로 알려진 백석의 번역시는 모두 167편이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백석은 1940년부터 만주에서 살다가 45년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번역 작업에 종사한 사실은 알려져 있고 번역시 몇 편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가 번역한 시의 전모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서정시를 쓰지 못하는 시대, 아니 아예 시다운 시를 쓸 수 없는 폭압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그가 선택한 것이 번역이 아니었을까”라며 “번역을 통해 감성의 고갱이인 언어를 간수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백석은 시 분과원이 아니라 외국문학번역원으로 활동했다.

“음산한 밤의 천막이/희미시 잠들은 창궁에 드리웠도다./괴괴한 정적 속에 골짜기와 수풀이,/잿빛 안개 속엔 먼 수림이 잠들고/하늘 덮은 밀림 속을 달리는 개울물 소리 들릴락 말락”(푸슈킨의 ‘짜르스코예 마을에서의 추억’ 부분)

‘희미시 잠들은’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석의 푸슈킨 번역은 외국문학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유려한 언어로 조탁되어 있다. 정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번역시를 통해 백석의 우리말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북한에서 그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됐다”며 “이를 계기로 새로운 백석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집은 백석 문학연구의 공백기였던 1950년대 백석의 문학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