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데이트-‘맥’ 시니어 아티스트 변명숙씨] “이젠 패션 거장들의 러브콜 받아요”
입력 2011-01-07 17:40
토요일 아침을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출근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늦잠이나 잔다고요? 일주일의 피로를 풀 수 있으니 그것도 괜찮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떨까요? 매일 뉴스에 나올 만큼 아주 유명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요. 이번 주부터 토요일 아침마다 데이트를 즐겨보세요.
“2011 SS(봄 여름) 트렌드는 4가지로 압축됩니다. 클래식한 형태와 극도로 강렬한 색감의 팝 클래식, 누드에 가까운 미니멀한 메이크업과 텍스처가 대조를 이루는 로 파인드(Raw Fined), 파스텔컬러를 아방가르드하게 응용한 아이스 드림(Ice Dream), 정교한 테크닉으로 연출한 모던 브론징 테라 코퍼(Terra-Copper)죠.”
소한 추위가 심술을 부리던 6일 서울 압구정동 LF갤러리에는 봄을 담은 색채의 향연이 펼쳐졌다. 세계적인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맥’이 뷰티 전문기자들에게 올봄과 여름 메이크업 트렌드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어조로 트렌드를 설명한 이는 맥의 시니어 아티스트 변명숙(38)씨. 전 세계 75개 지역에 1600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맥에서 시니어 아티스트는 40명밖에 없다. 그중 한 명인 변씨는 국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는 유일하게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에서 개최되는 세계 4대 패션 컬렉션에서 모델의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지구촌의 유행을 리드하는 세계 컬렉션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다.
“2000년 런던컬렉션에서 처음 메이크업을 맡았어요. 그때 정말 온몸에서 쫘악 소름이 돋았어요.”
한국인으로는 처음 입학한 런던아트대학 재학 때 따낸 기회였다. 40명 재학생 중 최우수 학생 2명에게만 주어지는 것을 그가 낚아챈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 런던 맥에 입사한 그는 컬렉션 백스테이지(모델들이 화장하고 옷 갈아 입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백스테이지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그는 “국가대표선수라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의 손재주에 감탄한 패션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알렉산더 맥퀸, 지안프랑코 페레, 돌체 앤 가바나 등등이 그들이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또 런던 맥 매장에서 일할 때 동료들과 손님들이 ‘스몰 옐로(small yellow)’로 불렀다”고 했다. ‘작은 동양인 주제에…’라는 냉소가 담겼던 스몰 옐로를 그는 실력으로 ‘작은 동양인이 대단하다’는 감탄으로 바꿔놓은 것. 당시 일주일에 7일,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메이크업을 했다는 그는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같은 유학생으로 만난 남편은 웬만한 여성보다 더 많이 메이크업 해봤을 걸요. 여러 가지로 고맙죠.”
2006년 귀국한 이후에도 컬렉션 때문에 일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다니 남편에게 미안할 만도 하다. 후배 양성을 위해 특강요청을 마다않는다는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지망생들에게 “색채감각이나 손재주보다 열정이 훨씬 더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예술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그는 춤사위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과감하게 메이크업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스스로 했던 분장 경험과 학원에서 익힌 솜씨로 라이선스 잡지 메이크업을 도맡아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1997년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변씨는 메이크업만 잘하는 것은 테크니션이라며,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손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울적한 이들은 위로해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얘기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보라고 합니다.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심리치료사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상대방의 내면까지 읽고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메이크업이죠.”
요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내는 것이 유행처럼 됐다. 변씨에게도 그런 제안이 적지 않게 들어온다고. 변씨는 “돈은 벌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롤(역할) 모델이 되고 싶어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맥에서 메이크업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이 되는, 새로운 길을 열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그는 꾸고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