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누명 벗고 조국에 돌아온 한지수씨
입력 2011-01-07 21:54
“매일 새벽제단을 쌓으며 태어나고 자란 내 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이뤄진 지금, 감사할 뿐입니다.”
살인 누명을 쓰고 이역만리에서 고통 받던 한지수(28)씨가 지난 5일 돌아왔다. 2009년 8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체포된 지 1년5개월 만이다. 그는 2008년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두라스에 머물던 중 네덜란드 여성 피살 사건에 연루됐다. 온두라스 로하탄 감옥에서 지내던 한씨는 2009년 12월 가석방돼 최근까지 온두라스 한인교회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생활해 왔다. 지난해 11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본보는 지난해 8월 온두라스 산페드로술라에 위치한 한인교회를 방문해 한씨를 인터뷰한 바 있다(본보 2010년 9월 16일 33∼34면 참조). 7일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에서 4개월 만에 다시 만난 한씨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국민일보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다시 찾은 함박웃음
씩씩했다. 온두라스, 그 힘든 생활 중에도 당당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동안의 시름을 털어버린 듯 밝은 표정이었다. 최고 기온이 영하에 머물렀던 이날의 강추위도 한씨의 함박웃음을 막지 못했다.
“오랜만에 한국의 겨울을 느껴보네요.” 예전 같으면 아무 느낌 없었을 한국의 겨울 날씨, 그조차 감사의 제목이다. 찬바람에 코가 빨개졌지만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 지난해 이맘때였다. 가석방 이후 한인교회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 그는 교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왜 비극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지 원망이 쌓여갔다. 자살 충동도 느꼈다.
당시를 생각하던 한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눈물 속에는 억울함, 안타까움,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한 데 대한 죄송함이 섞여 있었다. “어리석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다 저를 위해 길을 예비해두고 계셨던 건데 떼를 썼을 뿐이니까요.”
어려움 속 만난 하나님, 그리고 선물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박명하 선교사 부부, 교인들의 기도와 격려로 한씨는 하나님과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졌다. 지난 크리스마스 1주 전, 그는 온두라스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그는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고 성가대 활동을 빠지지 않았다. “세어보니 딱 52번의 주일예배를 그곳에서 드렸더군요.”
그곳은 믿음이 약했던 한씨의 신앙적 고향이 됐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임에도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그곳 사람들이 큰 자극을 줬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살아계심, 어려움 중에 그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큰 선물을 준비해두고 계셨다. 자신을 위해 매 시간 기도해준 고마운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성도들이 그 선물이었다.
“그들은 항상 가족처럼 옆에 계셨어요. 곁에서 기도하고 힘을 주셨습니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 제 마음에 안정을 줬습니다.”
기도하는 딸로의 변화
그에게 특별한 기도제목이 생겼다. 얼마 전 쓰러진 온두라스 한인교회 최을자 집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최근 최 집사는 한국에 들어와 수술을 했다.
“그곳에 있을 때 특히 저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셨던 분이에요. 제가 받은 사랑과 기도, 이제는 돌려드려야 할 때가 된 거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만큼 완쾌하실 거라 믿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 스스로도 생소하다고 했다. 온두라스에서 만난 믿음의 동반자들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변화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니 두려움도 고통도 없어지더군요. 이런 고난을 제게 주신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돌아보면 고통의 순간 하나하나 감사할 일입니다.”
아픈 지난날은 오히려 한씨를 강하게 만들었다. “힘든 일도 극복해냈으니 그에 걸맞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께 칭찬 받는 예쁜 딸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자신에게 큰 힘을 줬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저와 제 가족, 그 외 많은 분의 기도가 모여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기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군포=조국현 기자, 홍두영 인턴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