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 그는 더 독한 이기주의자였다
입력 2011-01-07 17:45
푸르뎅뎅한 피부,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 심술과 장난으로 가득 찬 못된 마음씨까지.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캐릭터가 슈퍼히어로 무비의 주인공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2011년, 저 괴물 슈렉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 아닌가. 드림웍스의 새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 역시 못생긴, 거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괴팍하고 못되기까지 한 캐릭터를 내세웠다.
외계의 행성에서 태어나 지구로 온 메가마인드는 태생부터 불행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에 도착한 메트로맨과의 어긋난 운명 때문에 교도소에서 길러진 것이다. 메트로맨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며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하는 동안, 메가마인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왕따였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우울해하던 소년 메가마인드는 점점 비뚤어지고, 마침내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다.
악당 메가마인드에 맞서서 ‘메트로시티’를 지키는 건 영웅 메트로맨의 역할이다. 하얀 피부와 우람한 체격, 날아다닐 수 있는 초능력…. 그는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이 여러 번 다룬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때의 영화들과 2011년 ‘메가마인드’가 다른 건, 비록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지만 악당이 이겨버렸다는 것이다. 메가마인드는 영웅 메트로맨을 없앤다.
선을 물리친 악은 어떻게 인류를 지배할까? 메트로맨과 그저 싸우는 게 일이었던 메가마인드는 적수를 물리친 뒤 말썽피우는 일에 질려버린다. 잘못을 저질러도 달려와 자신을 저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권태를 견디다 못한 메가마인드는 자신을 물리칠 영웅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시민을 지켜야 할 새로운 영웅 ‘타이탄’은 메가마인드보다 더한 이기주의자였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티고니스트가 엇갈리는 가운데 영화 속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슈퍼히어로’라고 믿었던 메트로맨의 숨겨진 비밀도 드러난다.
태어날 때부터 선하고 잘생긴 영웅이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쁜 짓을 하는 악당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식상함을 넘어 찾아보기 힘들게 된 지 이미 오래. ‘다크나이트’와 ‘슈렉’ 등을 통해 꾸준히 선과 악, 미남과 추남의 대립구도를 깨온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메가마인드’가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신선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각자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세 캐릭터와 탄탄한 이야기, 쉴 새 없는 유머로 인해 영화는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여주인공인 ‘록산’에도 주목해 보자. 요염한 팜므파탈도 아니고 청순가련하지도 않은 이 등장인물은 방송기자답게 활발하고 당당하다. 당연히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주인공은 메가마인드처럼 혁신적인 캐릭터는 아니어서 여전히 아름답고 착하고 글래머이기까지 하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결국 남자들의 보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런 설정이 재미를 해치는 건 아니나, 히어로 무비의 여러 고정관념을 뒤집은 이 영화의 안전장치 비슷한 셈이다.
웰 페렐과 브래드 피트가 목소리 작업을 맡았다. 한국어 더빙에는 김수로가 참여했다. ‘마다가스카 2’를 연출한 톰 맥그라스 감독 작품. 전체 관람가. 13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