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정부 초비상] 살처분 동원 공무원들 ‘정신적 외상’

입력 2011-01-06 21:33

돼지울음 환청들리고 감정조절 장애·식욕부진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돼지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거나 구덩이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돼지 모습이 꿈에 나타나 밤잠을 설치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는 살처분에 나선 공무원 10명 중 9명이 식욕부진과 우울증 등 갖가지 이상증세를 보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 김영우(연천·포천) 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살처분에 참여한 포천시 공무원 2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8%(124명)가 정신적 스트레스, 12.3%(26명)가 악몽 등 수면장애, 6.6%(14명)가 식욕부진을 나타냈다고 6일 밝혔다. 후유증이 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2.8%(27명)에 불과했다.

양주시에서는 공무원 A씨가 살처분 작업을 한 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시 정신보건센터에서 “강제 죽음을 당한 가축의 잔영이 자꾸 떠오르고,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등 스스로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고양시정신보건센터는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 500여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장애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사건충격척도조사를 벌인 결과 공무원 B씨가 전문의 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파주시정신보건센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11건 신고됐다. 이 중 공무원 B씨는 돼지를 몰아내 살처분을 끝낸 뒤 “돼지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두리번거리는 바람에 동료 공무원들이 숨은 돼지 색출 작업을 다시 벌이기도 했다. C씨는 살처분 현장에서 돌아온 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돼지 울음소리로 들려 소스라치게 놀랐는가 하면 돼지가 구덩이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악몽을 꾸다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도는 지금까지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도청과 시·군의 일반 공무원 7710명을 대상으로 후유증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성근 경기도보건위생담당관은 “살처분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증세를 가볍게 여기다 자칫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상담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의정부=김칠호 기자 seven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