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사각지대의 ‘75만원 고령 세대’
입력 2011-01-06 18:01
성준(가명)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엄마 없이 40대 아빠, 두 살 위인 형과 함께 산다. 집은 서울 도봉산 바로 밑에 있다. 월세다. 단열재가 들어가지 않은 시멘트벽이라서 전기난로를 켜도 칼바람이 그대로 집안까지 들어온다. 아빠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방학을 맞은 성준이와 형은 집이 너무 추워 아빠를 따라 아파트 경비실로 가서 하루를 보낸 뒤 아빠와 함께 ‘퇴근’한다.
인근의 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100달러 지폐를 나눠주는 미국의 비밀 산타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세밑에 담임목사 등이 10만원씩 넣은 봉투를 들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선다. 지난달 28일 사회복지사 소개로 알게 된 집이 바로 성준이네. 딱한 사정에 30만원을 전달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 날, 목사는 마음 문을 두드리는 음성에 결심을 한다. 부동산중개업소로 달려가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집을 계약하고 성준이네를 이사시킨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참담한 홍익대 미화원 해고
구제에 힘써야 할 교회의 손길이 뭐가 대단하냐고 치부할 수 있지만 당초 계획된 10만원의 100배 이상 되는 돈을 지출하기란 실로 어려운 법이다. 의례적 구제에 머무는 여느 교회와 달리 진정성이 담겨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일은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공존·공생의 정신이 원동력이다.
반면 새해 벽두부터 촉발한 홍익대 비정규직 해고 사태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 배경에는 물신주의가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익대에서 해고된 환경미화원 등 140여명은 3일부터 학교 본관에서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들은 학교 측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로 계약 연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용역업체가 입찰을 포기해 집단 해고사태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홍익대뿐 아니라 동국대 동덕여대 등 여타 대학에서도 수년째 되풀이되는 분쟁이다. 근본 원인은 열악한 처우다. 대부분 50∼60대인 이들 근로자는 월급 75만원에 한 달 점심값 9000원을 받고 주 50시간씩 근무했다고 한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시간당 4320원)에도 모자란다. 차별과 무시 등 모멸적 대우도 받았다. 지난달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홍익대는 노조가 결성되자마자 싹을 잘랐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인간, 정의, 관용, 배려 등의 기본적 가치를 도외시한 것이다.
비정규직 가족을 껴안은 교회가 올바른 사회적 태도를 보여줬다면 혹한에 비정규직을 길거리로 나앉게 한 홍익대는 반사회적 태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다면 빈부격차를 완화할 수 없고 사회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불평등 심화를 걱정하는 중요한 이유는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 의식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이 점점 더 괴리돼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왜 실태파악 안 하나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면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도 양극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현재의 빈부격차를 그대로 안은 채 나이가 든다면 양극화 현상은 심각해진다. 미화원 대다수는 고령의 여성들이다. 청년 비정규직이 ‘88만원 세대’라면 이들 비정규직은 ‘75만원 세대’인 셈이다.
홍익대 미화원처럼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할 정부가 그간 무엇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는 청년층뿐 아니라 고령층 일자리에 대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그늘진 곳을 보듬는 데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