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경제관념 갖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입력 2011-01-06 17:37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조지 매그너스/부키

2030년 6월 독일. 스벤 다로프라는 노인이 자신의 돈을 가로챈 의료보험사인 프로라이프의 사장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다 수류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어서 독일 사회는 충격에 휩싸인다. 앞서 독일 정부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자 연금 지급액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이 됐다. 매달 560유로(약 80만원)의 ‘쥐꼬리만한’ 연금을 지급받게 된 노인들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벼랑으로 내몰리고 생존을 위해 구걸을 해야 한다.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는 급기야 노인들을 아프리카의 수용소로 보내 ‘처리’하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2007년 독일 ZDF 방송에서 방영된 ‘2030 노인들의 봉기(2030 Aufstand der Alten)’라는 제목의 3부작 TV시리즈의 줄거리다. 다소 풍자적이고 황당한 면이 있지만 고령화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닥칠 사회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인류의 수명이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저출산이 일상화되면서 고령화 문제는 이제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됐다. 이미 연금을 받는 인구가 16세 미만 인구를 능가하는 나라가 여럿이고 두 연령 세대 간의 격차는 앞으로 20∼30년에 걸쳐 더욱 벌어질 게 뻔하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9년 사이에 태어난 X세대나 1980년에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1989년 사이에 태어난 Y세대, 또 이후에 태어난 인터넷 세대는 자신들의 노후만 걱정하면 됐던 앞선 세대와 달리 전체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짐을 떠안게 된 세대다.

전 지구적 재앙으로 떠오른 고령화 문제를 세계적·경제적 관점에서 살핀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이 출간됐다. USB 투자은행의 선임경제고문으로 거시 경제와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 조지 매그너스는 “고령화 논란의 핵심은 돈”이라고 단언하고 고령화가 가까운 미래에 초래할 사회 경제학적 변화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인구 구조 변화는 세계화나 이민, 국제 안보와 직결된 거시적인 문제인 동시에 은퇴 후의 노년을 대비한 계획 등 우리 삶과 직결된 미시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 저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 학문과 현실 간 간극을 최대한 좁혀 쉽게 글을 쓰는 데 주력했다.

서문을 제외하고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첫 세 장에서 역사적·시대적 관점에서의 인구 문제를 다룬다. 고령화한 세계의 특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부작용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

“가만히 앉아 (노령화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사회와 제도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위기와 기회가 찾아올 것인가? 노령연금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고령화하는 서구 사회와 청년 인구가 늘어나는 신흥시장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인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57∼58쪽)

저자는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부나 개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예컨대 연금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추세로 갈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와 미래의 근로자들이 베이비 붐 세대와 달리 은퇴에 대비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는 식이다.

다음 세 장에서는 미국, 일본, 서유럽과 개발도상국의 고령화 문제를 비교한다. 자본과 노동이 무수히 이동하는 세계화 시대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고령화로 인한 어떤 차이가 발생하고 이것이 세계경제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한다. 그는 고령화가 개발도상국에게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한다. 개발도상국은 노년층 부양비가 높아지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두터운 생산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고령화 현상이 가시화되는 2030∼2050년이 되기까지 사회보장 제도를 갖추고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경제와 사회가 동시에 붕괴되는 사태를 맞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마지막 세 장에서는 종교와 국제 안보, 세계화, 이민 증가, 기후 변화, 자원 고갈 등의 키워드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문제를 통계자료와 함께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찰한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고령화 문제는 자유시장 논리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령화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므로 이를 통제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부유층이나 고소득자의 소비에 보다 높은 세금을 매기는 정책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인류에게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경제관념에서 벗어나 다함께 잘사는 공동체적 경제관념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다. KBS 아나운서에서 전문번역가로 변신한 홍지수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