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주만 보며 살아야 합니다

입력 2011-01-06 17:35


히브리서 12장 14∼17절

눈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안입니다. 빛을 느끼고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둘째는 지안입니다. 세계와 역사, 학문을 깨닫고 결단하는 눈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영안입니다. 초월 속에 감춰져 있는 세계까지 볼 수 있는 눈을 뜻합니다. 시편 119편 18절은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이하에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즉, 영안이 가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같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영안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불후의 명곡들을 작사할 수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 역시 지식 너머에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기독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화평과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화평은 인간관계를,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만약 이 두 관계가 깨지면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웃의 허물이나 잘못을 보면 용서하거나 감싸려는 마음보다는 어찌하든지 그것을 드러내고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 입장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면 이웃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선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 닮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따른다면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쓴 뿌리가 있으면 결국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감사와 긍정적인 사고보다는 불평불만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는 명분을 지켜야 합니다.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장자 명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이 땅에서 구현하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 헌신 등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 물질과 성공, 명예 등을 앞세우는 건 장자의 명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직분이 어떠하든지 주의 백성, 주의 자녀다워야 합니다. 온전히 주님을 경외하면서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장원기 목사(예장 백석 전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