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상등 켜졌다] “금리인상 때 놓치고 뒷북… 물가대응 앞뒤 바뀌어”
입력 2011-01-05 21:36
연초부터 물가가 뜀박질하는 가운데 ‘품목별 가격관리’에 집중하는 정부 물가대책에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 물가 불안의 최대 원인인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에 대한 대책은 도외시하고 때 지난 ‘물가단속’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관리는 한 품목의 가격을 규제하면 다른 데서 가격이 오르는 ‘풍선효과’로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데다 정말 가격 인상이 필요한 기업이나 업종을 강제로 억눌러 경제 전반의 자원 배분을 크게 왜곡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원자재의 수입 물가를 낮추기 위해 원화 평가절상을 점진적으로 허용하는 한편 근본적으로는 금리를 정상화시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는 품목별 가격 억제나 공급물량 확대 정도로 해결될 단계가 지난 만큼 환율이나 금리 등 거시경제 변수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5일 “현재 물가가 급등하는 이유는 공급량 부족 등의 요인도 있지만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영향이 가장 크다”며 “금리정책은 외면하고 요금 억제에만 집중하면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경제학계는 물론 IMF 등 국제 경제기구까지 금융위기에서 가장 강하게 회복한 한국이 금리 인상을 통해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의 ‘덫’을 피해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물가 상승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부동산정책, 환율전쟁 등을 이유로 금리를 잇따라 동결했다. 이것이 정부가 금리 인상에 실기하고 뒤늦게 가격관리에만 힘쓴다는 눈총을 받는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된 데다 국내에서도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유동성을 제때 회수하지 않아 물가 불안이 심각해지는 양상”이라며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화폐적 현상인 만큼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이에 따라 근본적으로 현재 경기회복 단계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금리를 정상화해야 하며 보조적으로 원화가치 절상을 일정 부분 허용해 수입 물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고성장 집착 정책이 2008년 경제 상황을 재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성장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펴면서 물가가 치솟았다. 생산자물가는 그해 5월 9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 경제기관 관계자는 “현 정부는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상충관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며 “급할수록 금리 등 기본 대책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5%의 고성장을 목표로 내세운 것은 통화정책에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인데 물가까지 낮추겠다는 것은 상호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대책이 1970년대식 관치를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리를 묶어놓은 상태에서 공정거래위가 물가관리를 위해 규제 수단을 동원하면 시장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을 왜곡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