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총체적 난국] 그 많은 소·돼지 잃고… “정부가 한게 도대체 뭔가”

입력 2011-01-05 21:34


지난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확인된 구제역은 5일 현재 6개 시·도, 41개 시·군까지 확산됐다. 애초 ‘경북 안동 방역선’으로 구제역이 잡힐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이 초기에 빗나간 이후 구제역은 무작위적으로 확산됐고, 방역 능력은 한계에 부닥쳤다. 예방백신 접종도 구제역이 퍼지고 나면 접종 지역을 늘리는 등 ‘상황 악화 후 대처’식으로 진행돼 ‘예방’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달 5일 안동 구제역 관리지역(첫 발생지 10∼20㎞ 이내)을 이탈한 경북 예천 한우농가에서 처음 구제역 확산이 확인됐을 때도 정부의 표정은 비교적 자신만만했다. 구제역 감염 경로가 예측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의 확산은 기존 방역선으로 차단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예측은 10일 후인 15일 경기도에서 돼지 구제역이 확인된 이후 빗나가기 시작했고, 정부의 방역선은 무의미해졌다. 역학조사 단계에서 경기도 파주의 발생 농장 인근 돼지분뇨 처리시설 업자가 최초 발생지인 경북 안동에 다녀온 사실이 파악되지 않았고, 한번 감염 경로를 놓치자 이후 구제역 확산 속도와 방향을 따라잡는 것은 역부족이 됐다.

박봉균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시험 출제 방향을 모르고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봤자 성적이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한번 (경로를) 놓친 사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버린 뒤에는 정부는 인력이나 물자로나 따라잡기에 역부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방접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뒤늦은 대처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럭비공처럼 튀는 구제역을 살처분 매몰 처리로 쫓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음에도 ‘수출 청정국 지위’ 문제를 거론하며 버텼던 정부는 지난달 23일 구제역이 경북, 경기, 강원에 이어 인천까지 확산된 뒤에야 예방접종 실시를 결정했다. 그마저 경북 안동·예천, 경기도 파주·연천·고양 등 5곳의 소농가에 한해서였다. 이후 구제역 확산세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충남북까지 확산되자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백신 접종 지역을 사실상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이미 살처분·매몰된 가축이 77만8850마리에 달한 뒤였다. 특히 초반 정부 비축 백신량이 부족해 접종 지역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사실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백신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접종 지역을 최소화하는데 결정 이유가 집중됐다”고 꼬집었다.

전체 방역 상황을 총괄하고 관리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역학조사 전문가 등 전염 전문 인력이 부족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하는 초유의 상황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지방자치제로 방역 권한과 의무가 지자체에 주어지면서 효율적인 방역도 어려웠다. 박봉균 교수는 “이동경로 차단 실패, 방역인력 분배 문제 등은 중앙 차원에서 전체를 총괄하지 못하면서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외 여행이 자유화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늘었지만 농수축산물 검역이 강화되지 않은 점도 이 같은 무작위적 확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5∼11월 국외 여행을 다녀온 축산농가는 10만7000명 가운데 2만5000명이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무사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몰처분과 백신 접종 작업을 끝낸 뒤 인력·차량을 5일가량 격리해야 하는 상식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향후 감염경로 파악에 가장 중요한 역학조사가 농장주 등의 비협조로 제대로 이뤄지기도 힘든 상황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정부의 매뉴얼은 꽤 갖춰져 있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방역망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