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역 불능’-여야 ‘대책 불감’-농민 ‘당국 불신’… 구제역 ‘3不’ 총체적 난국
입력 2011-01-06 10:02
“지금 구제역 발생 지역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2주일간 방역을 잘하면 구제역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1월 4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구제역 방역 점검차 충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식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소나 돼지를 몹쓸 구제역 때문에 땅에 묻어야 하는 농민들은 더 이상 유 장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 한우농가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뒤 경북 지역으로 확산됐을 때만 해도 ‘내 소나 돼지는 괜찮으려니’ 했던 농민들은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가축재앙’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가 자신하던 방역망은 뚫린 지 오래고, 구제역 백신 접종을 맞은 소와 돼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2000년과 지난해 1월, 4월 세 차례나 구제역 파동을 겪고도 허술한 방역체계와 뒷북 대응으로 이번 재앙을 초래한 정부 당국과 구제역 발생 40일이 다 되도록 가축전염병예방법 처리 등에 손놓고 있는 정치권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5일 “소 외에 돼지에도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을 할 계획이며 지역과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구제역 의심 증상이 접수된 강원도 양양·횡성군과 경기도 용인, 충북 진천 돼지가 구제역으로 판정되는 등 구제역이 돼지농가로 확산되는 데 따른 것이다.
강원도 춘천 한우농가에서도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했다. 특히 인천시 강화군에서는 백신 접종을 맞은 한우도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았다. 충북 음성 돼지농가와 진천 한우·젖소 농가, 충남 보령 돼지·한우 농가, 당진 돼지농가에서도 구제역 의심 신고가 잇따랐다. 이날까지 구제역으로 살처분 매몰된 가축은 82만6456마리에 달했고, 보상비는 7000억원을 넘었다.
방역 당국은 구제역이 돼지농가로 확산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전국 축산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1000만 마리로, 이 가운데 접종 대상으로 검토 중인 종돈(씨돼지)과 모돈(어미돼지)은 100만 마리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백신은 18만 마리분밖에 되지 않는다. 추가로 영국에서 들여올 백신 125만 마리분은 14일이나 돼야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제역은 가뜩이나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물가에도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이날 현재 돈육 대표가격은 ㎏당 4817원으로 한 달 전인 12월 6일의 3834원보다 무려 25% 가까이 뛰었다. 한우 가격의 도매시장 경락가 역시 암소 1등급의 경우 ㎏당 1만8261원으로 지난달보다 15% 상승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에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구제역 대책 관련 긴급 장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구제역 확산에 따라 관련 부처 장관들을 모아 종합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전남 영암군 육용오리농가에서도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의심 신고가 추가로 접수됐다. 이 농가는 오리 1만4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명희 남도영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