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피로회복제로 하루 시작하는 ‘예쁜 권사님’

입력 2011-01-05 18:16


드디어 누워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약국 일을 마무리하고 늦은 저녁 먹으러 밥집을 향해 가다가 순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하늘과 별이 짠하고 마술처럼 나타났고 아무 생각 없이 빙판길에 누워 하늘바라기를 하였지요. 정신 차리고 일어나 같이 간 친구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피식 혼자 웃었습니다.

어지러운 기분과 약간 불편한 몸이 편치는 않았으나, 아무 생각 없이 잠깐이긴 하지만 거리에 누워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잠시 잠을 청해 여기저기 뭉치고 놀란 몸을 편히 쉬게 하였지요. 11시30분이 다 될 때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마지막 날 엉덩방아… 그리고 1년 반성

한밤중 빤질거리는 빙판 길 위에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발을 떼다보니 제 삶에서 지난 1년이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즐겁고 신났던 삶도 기억되었지만 그보다는 팍팍하고 넘기기 어려웠던 삶의 흔적이 떠올라 목울대에 걸려 뻐근해졌습니다.

저희를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넓고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지만 쓰시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하시는 것이리라 믿고 있으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짐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교회에 도착하여 반가운 얼굴과 인사를 나누고 본당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분주함이 느껴지는 본당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의 정을 나누는 교회 성도의 따스함이 가득했습니다.

늘 보는 식구들 사이에는 날씨가 춥고, 시간이 늦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가지 못한 낯선 얼굴도 간혹 섞여 있었지요.

예쁜 권사님이 오셨을까 하고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약국에서도 뵐 수가 없는데, 주방 일을 그만두신 것인가, 어디가 아프신가…조금은 특이한 분이었습니다. 밤에 일을 하러 나오시면서 항상 빨간색의 입술연지를 바르셨고 머리에도 살짝 기름을 발라 가지런히 넘기고, 옷매무새도 늘 고왔습니다. 약국에 들어와서 피로회복제 음료수를 사 드시는 그분이 처음에는 이웃동네 사는 분인 줄 알았지요. 더군다나 교회 권사님이라고 말씀하셔서 동네 분인줄 알았습니다.

밤에 약 심부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집창촌 주방이모로 일 하시는 걸 알았습니다. 지하철을 한 시간 남짓 타고 오신 그분의 하루는 피로회복제로 시작되었지요. 일흔이 다 된 연세에 힘에 부치는 밤일을 하시는 모습은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의류브랜드가 뭐냐고 물어 보는 그분 얼굴에서 고단함을 읽을 수 있었지요.

손자 녀석에게 줄 겨울 코트를 사야 한다면서 고민 하시기에 아이들 옷은 비싼 거 살 필요 없다고, 자꾸 자라기 때문에 싸고 튼튼한 옷을 사면 된다고 말씀 드렸지요. 제 이야기를 들으신 그분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낮엔 주방 일… 밤엔 약 심부름까지

그분의 웃음을 본 며칠 뒤 그해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열심히 박수치며 찬양하는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직 일하는 시간일 텐데 아마 잠시 틈을 내어 나오셨던 것이었지요. 예배순서를 모두 마치고 목사님의 축복안수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못 드려서 마음이 불편하였는데 왜 가까이에 교회를 두고 이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평안한 표정을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교제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집 가까이에도 갈 수 있는 식당은 있었지만 벌이가 이곳만큼 좋지 않아서 조금 멀지만 이곳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도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다음주에 더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