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모르는 시·의회… 지방자치 사라진 서울
입력 2011-01-05 14:33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줄줄이 사법부에 맡기고 있다. 소통과 합의를 포기하면서 ‘지방자치’가 실종된 모습이다.
시는 지난해말 시의회가 재의결한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 등에 관한 조례 공포를 거부한다고 5일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무원 대상 시정설명회에서 “소득 상위 50% 이상 자녀에게 무상급식 혜택을 주는 것은 질 나쁜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서울시의 복지 가치를 지켜내려면 이 싸움에서 이겨야한다”고 말했다. 강경 대응을 천명한 것이다.
시의회는 허광태 시의회의장 명의로 조례를 공포할 방침이다. 허 의장이 조례를 공포하면 시는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이 경우 시의회는 시민단체·지역조직 등과 연대해 대규모 소송단을 꾸리고, 대대적인 여론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 소속 오 시장과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강(强) 대 강(强)’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무상급식 문제뿐 아니다. 2011년 예산, 시장의 의회 불출석, 서울광장 조례 등을 놓고도 지루한 공방을 벌이다 끝내 법원이나 검찰로 달려가고 있다.
시와 시의회의 다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당장 시는 무상급식 695억원 등 시의회가 신설·증액한 예산 75건 3709억원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 전체 예산의 약 2%다. 감액분까지 포함할 경우 10% 정도가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양측의 충돌로 시민들을 위한 예산이 파행 집행될 위기에 놓였다.
이런 충돌은 시와 시의회가 각각 소속 정당의 정치적 대결을 맹목적으로 대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의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시의회는 민주당의 전면 무상급식 도입을 대변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시와 시의회가 주민자치 구현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정신을 살려야한다고 강조한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윤성이 교수는 “무상급식 등을 둘러싸고 양측이 진보와 보수, 보편복지와 포퓰리즘이라는 추상적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를 구체화해야한다”며 시민정책패널을 제안했다. 양측 모두 각계각층의 다양한 패널을 통해 여론을 정밀 수집하고, 이를 정책에 공정하게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충북대 행정학과 최영출 교수는 “시와 의회를 중재할 수 있는 제3의 기구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방선거의 정당 공천제도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체장과 지자체 의원이 공천 때문에 소신 있는 행보를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강주화 김경택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