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조광래 감독, 측면을 허물라

입력 2011-01-05 17:42


조광래 감독이 ‘단디’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디’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을까? 정신무장은 기본이다. 문제는 공격 전술이다. 원톱으로 누구를 두느냐, 박지성의 위치는 어디가 좋은가 등을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은 현대 축구에서는 무의미하다. 1970년대 이후 토털 축구가 대세이기 때문이다. 골 넣은 수비수라는 말이 흔하지 않은가. 20∼30m를 폭으로 해 띠로 선수가 몰려다니는 것이 요즘 축구인데, 위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제는 이 띠를 벗어나지 않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할 수 있는 체력과 패스 능력이다.

스페인이 이런 축구에서 가장 성공적이다. 전원이 세밀하게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마치 농구처럼 한 번 공격에 한 번의 슈팅을 하고 전원 수비로 돌아선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축구를 하려 애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체력 훈련을 가혹하게 하고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패스가 신통치 않다. 세밀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개인기마저 떨어져 공격은 거의 언제나 답답하다. 공을 많이 잡는 것 같지만 중앙돌파에만 의존해 상대수비수는 점점 더 공격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메시처럼 개인 돌파를 하는 선수들이 아니기에 상대편은 편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물론 최근에는 세트피스마저 신통치 않다.

나는 측면 돌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은 부지런하지만 측면을 돌파하는 공격수는 아니다. 코너의 깃대가 부서질 것처럼 측면을 돌파하는 공격수를 근래 대표 팀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빠른 스피드와 함께 수비수 두세 명을 제치고 코너까지 다다르면 수비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 오프사이드가 일거에 없어지고 수비수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일각이 무너지면서 수비 시스템 전체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바로 크로스를 올릴 수도 있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볼을 끌고 들어올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위기가 분명하다. 측면이 무너지면 수비수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앙은 비게 돼 중앙돌파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게다가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시원하게 돌파한다면 수비는 매우 곤혹스러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고 파괴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측면 돌파가 없는 한국축구는 보통 측면으로 내주면 어느 정도 몰고 가다 다시 안으로 패스를 한다. 그럼 다시 중앙에서 어찌 해보려고 패스를 주고받는다. 여의치 않으면 뒤로 돌리고. 이렇게 하면 흐름이 끊기고 지루한 시합이 되고 만다. 이러면 세트피스나 운에 의존해야 한다. 최근에는 중앙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 장신 공격수를 보강했는데 측면을 돌파할 공격수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당장 호날두와 같은 공격수가 나타나지는 않을 테지만 관심을 갖고 키우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측면을 허물어라. 그럼 골이 보일 것이다.

탁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