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 횟집 여사장이 영화사대표됐네
입력 2011-01-05 17:10
[미션라이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횟집 여사장이 영화사 대표가 됐다. ‘황금어장’의 문명숙(56)씨다. 그는 지난해 영화사 ‘메이플러스’의 대표를 맡았다. 첫 작품으로 상업영화 ‘회초리’를 제작, 이달 개봉한다.
영화에 미쳐 영화사 대표가 된 게 아니다. 영화는 고사하고 TV조차 보지 않던 사람이다. 지난 2008년 MBC ‘무한도전’이 노량진시장을 찾았을 때다. 많은 가게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며 난리였다. 유재석은 그 손짓을 뿌리치고 문씨의 가게에 들어섰다.
“사장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무한도전인데, 촬영 좀 할게요.” “촬영요? 싫은 데요.”
유재석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다른 데서는 서로 오라는데요.” 문 대표가 말했다. “누구신데요?” ‘무한도전’은 커녕 유재석도 몰랐던 것이다. 몰라 본 것이 아니라, 몰랐다.
“영화와의 인연은 ‘회’초리와 ‘횟’집이 돌림자라는 정도? 남편에게 이번 영화 이야기를 했더니 같은 ‘회’자여서 친밀감이 간데요. 호호”
그렇다고 하얀색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칼로 회를 직접 떠서 파는 사장은 아니다. 지난달 31일 만난 문 대표는 전직 중년배우 같았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머리는 한껏 부풀려 멋을 냈다.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노량진 시장까지 금빛 그랜저를 타고 이동했다. 취재 때문에 멋을 낸 것도 아닌 듯 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주방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평소 주방에서 일하지 않는다며 극구 마다했다. 굳이 꾸며서까지 잘 보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그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다른 게 있다면 철이 없었다는 것이었죠. 가난한 신랑의 첫 월급으로 고가의 부츠를 살만큼 쇼핑을 즐겼어요.” 그러다 친척의 권유로 횟집을 인수했다. 2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영화와 관련을 맺은 것은 ‘기도하는 권사’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는 극동방송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위원 중에 엔터테인먼트사 대표가 있었다. 2009년 여름 사무실로 와달라고 전화가 왔다.
“10년 전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데요. 이미 시나리오도 사뒀고 지금까지 기도해왔는데, 이제 시작하려 한데요. 그래서 뭘 도와주면 되느냐고 했지요. 일단 기도해 달라고 했어요.” 동명소설을 각색한 선교 영화 ‘독 짓는 늙은이’다. 후에 투자도 했다.
메이플러스와의 인연도 이 소문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16년 됐다. 그동안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죽어도 좋아’ 등을 선보였다. 다 망했다. 대표였던 김진홍 현 PD가 지인의 소개로 횟집을 찾았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꼭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신앙이 좋다고 소문 들었다. 권사님이 기도해주시면 될 것 같다”고 부탁했다.
“김 PD가 원래 교회도 나가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마음이 급했던지 갑자기 철야, 새벽기도에 나갔데요. 그 교회 목사님이 무슨 일 있느냐고 걱정하더래요. 제작비가 10억원이라고 하기에 기도는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문씨도 걱정이 됐다. 평소 같이 기도하던 한 건설회사 여사장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연락이 왔다. “권사님 같은 분이 투자하신다면 저도 함께 할게요.” 문씨가 “책임 못 진다”고 했지만 이 사장이 제작비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나머지는 문씨가 맡았다. 그러자 김 PD는 아예 영화사 대표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40여일 기도한 문씨가 그러자고 했다.
일단 각서부터 썼다. 지분과 수익 배분을 명확히 해야 했다. 그는 법무사를 불러 “수익의 10분의 1은 십일조, 또 10분의 1은 교회건축 헌금, 10분의 1은 선교 헌금할 것”을 명시했다.
“영화가 대박이라도 나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김 PD가 ‘그럼 벌써 30%나 나가는 거네요?’라고 하던데, 이런 각오 없인 안 된다고 했죠. 알았다고, 다 대표님 알아서 하시라고 했어요.”
연기자 선정도 함께 했다. 주인공 안내상은 그가 뽑았다. 신학과 졸업이 눈길을 끌었다. “왜 목사가 안 되고 연기 하냐고 물었더니 끼가 너무 많아서래요. 끼 다 발휘하고 그때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겠다고.”
대표가 되자 ‘기도하는 권사’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영화는 뒷전이고 전도가 우선이었다. 여주인공 진지희 부모에게 1월부터 교회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한번 교회에 출석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안가고 있지만 곧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텝 70여명과 매주 예배를 드렸다. 모든 스텝이 비기독인이었다. 날씨 때문에 촬영 못하면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 올 여름엔 유독 비 오는 날이 많았다. 촬영 일정이 늘면 비용이 늘었지만 문 대표는 오히려 기뻤다.
한 달 반가량 늦춰지자 짜증내는 스텝도 있었다. 기도하는데 날씨가 왜 안 좋으냐는 것이었다. 문씨는 “하나님은 영화보다 당신 생명을 기뻐하세요”라며 위로했다.
그러나 석 달 촬영이후 가진 마무리 예배에서 모든 출연진과 스텝들은 감격했다. “흥행이나 성공에 목적을 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관심이 있으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모두 같이 울었죠. 우리에게 영화는 이미 해피앤딩이에요.”
사실 문씨는 서울 상도중앙교회(박봉수 목사) 전도 왕으로 유명하다. 처음 교회 나간 해부터 11년동안 매년 전도 왕이 됐다.
교회를 나간 것도 특이했다. 가게 앞에 사는 친언니가 교회 가자고 조를 때마다 “당신이나 잘 믿으세요”라고 빈정거렸었다. 또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골프장에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예수를 만났다고 했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면류관도 씌워주셨어요.” 면류관이 뭔지도 몰랐던 그는 “꿈속에서 미스코리아 진 왕관을 썼다고 설명했다”며 웃었다. 그날 밤 11시 정신과 병원도 갔었다. 갑자기 예수를 만났다고 하니 가족들은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후 주일, 새벽, 철야 예배 등 모든 예배에 참석했다. 새벽 예배는 1등으로 갔다. 남편이 “평범하게 교회 다녀라, 새벽부터 교회 가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욕먹는다”며 핍박도 했다. 그 좋아하던 골프도 딱 끊었다.
대신 골프 친구들에게 전도하고 병원으로, 상가로, 아파트로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 처음 전도한 골프 친구가 얼마 전 권사가 됐다.
그는 영화 제작 등으로 바빠 지난해 전도왕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난데없이 영화계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또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회초리’는 오는 20일 전국 200여 극장에서 동시 개봉된다. 처음 투자한 영화 ‘독 짓는 늙은이’는 오는 3월 극장가에 걸린다. 그는 또 다른 시나리오도 2개 갖고 있다. 하나는 120억 원짜리 대작이다.
영화사 대표가 된 이상 그의 꿈도 ‘대박’이다. 물론 대박의 목적이 다르다. “영화가 대박 나서 기자회견하는 상상을 해요. 사람들이 묻겠죠. 흥행비결이 뭐냐고요. 그렇게 얘기하려고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어요.’ 이런 날이 오도록 기도해 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