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대그룹, 자금출처 의무 위반”… 현대건설 MOU 가처분 신청 기각
입력 2011-01-04 21:22
법원이 현대건설 채권단의 갈지자 행보를 비판하면서도 ‘양해각서(MOU) 해지를 무효로 해 달라’는 현대그룹의 가처분 신청은 기각했다. 일부 불합리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채권단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현대그룹에 결국 MOU 해지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원 “현대그룹, 의무 위반”=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입장 변화와는 상관없이 약정에 따라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했어야 한다”면서 “MOU 해지를 무효로 하거나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 주식을 매각하는 절차를 금지할 긴급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 명의로 나티시스 은행에 예치된 1조2000억원의 출처에 의문이 제기되자 대출 계약서 대신 세 차례에 걸쳐 대출 확인서만 제출했다.
재판부는 “1조2000억원 대출금에 대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주식 담보 여부 및 자금의 인출제한 여부와 대출확인서 작성 명의인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점은 약정에 따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채권단과 현대차그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재판부는 “채권단은 원칙을 번복하며 현대그룹에 의무 이상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혼란을 야기했다”면서 “향후 기업 매각 과정에서는 이런 일들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현대차그룹 ‘승기’ 잡아=채권단은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을 5일 주주협의회에 상정하고 7일까지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채권단의 75%(의결권 기준)가 동의해 안건이 가결되면 채권단은 현대차그룹과 오는 14일까지 MOU를, 이르면 2월 중순에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3월 말쯤 인수대금 납입이 완료되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종료된다.
채권단은 다만 현대그룹이 이번 결과에 승복할 경우 이행보증금 2755억원의 반환 및 현대상선 경영권을 보장하는 중재안을 현대그룹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 결정을 끝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종료된다면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현대그룹과 (중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상급법원에 항고 의사를 밝혀 중재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가처분 신청이기는 하지만 민사수석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상급법원의 본안소송에서 결과가 뒤집히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채권단은 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그 이전에 매각 절차를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