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얼어붙는 소독약… 한파 속 방역 24시간 ‘사투’

입력 2011-01-04 18:36


본보 기자 천안 병천면 구제역 방역초소 체험 르포

고압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소독약이 ‘치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차갑게 발사됐다. 왕복 2차로 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예방주사를 맞듯 액체소독약을 받아들였다. 4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송정리 마을 입구에 마련된 구제역 방역초소에서의 방제활동 모습이다.

비닐 같은 재질의 부직포로 만들어진 하얀 방역작업복은 너무 얇았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파고들었다. 면장갑을 낀 양손은 고압분무기를 만진 지 10분도 안 돼 꽁꽁 얼었다. 아무 감각이 없었다. 2㎏ 남짓한 분사기를 든 팔도 무게를 못 이겨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1분에 10여대 꼴로 차들이 지나갔다. 조용히 정차해 액체소독약을 맞는 차도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차도 적지 않았다. 서행을 알리는 형광봉을 위아래로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체에서 튄 소독약이 작업복 위로 뿌려졌다.

도로 위에 누워있는 파란색 파이프에서도 액체소독약이 뿜어져 나와 차체 밑을 씻어냈다. 영하 10도 가까운 날씨에 뿜어졌던 소독약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얼어 버렸다. 삽을 들고 땅에 달라붙은 얼음을 떼어냈다. 방치하면 차들이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소독약을 긁어내고 그 위에 염화칼슘을 뿌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찬 공기에 눈마저 시렸다.

구제역이 천안을 습격한 지난 2일부터 송정리 주민들은 하루에 12시간씩 2교대로 방역초소를 지킨다. 낮 작업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밤샘작업은 정말 고역이다.

송정리에서 나고 자란 이선구(69) 할아버지도 땅에 얼어붙은 소독약을 삽으로 치워냈다. 그는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너무 착잡해 매일 눈물이 난다”면서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잠시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고압분무기와 작은 온열기 한 대, 플라스틱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송정리 초소에서 조금 떨어진 봉황리 방역초소는 8시간씩 3교대로 돌아간다. 천안 농산물도매시장 이승우 관리팀장의 눈은 충혈됐지만 고압분사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낮에 방역하고 밤에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면서 “그래도 구제역이 얼른 사라지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휑한 축사에는 곧 다가올 일을 알 리 없는 젖소들이 이리저리 거닐었다. 30년간 젖소 60마리를 키워 온 김창식(53)씨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우유를 짜서 아이도 키우고 먹고 살았는데 자식 같은 젖소들이 죽는 꼴을 어떻게 보느냐”며 “다 땅에 묻고 나도 죽어버리련다”고 눈물을 삼켰다. 관성2리에 사는 장정환(63)씨는 20년간 키우던 돼지 2000마리의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저것들을 내가 끌어안고 죽을 수도 없고….”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천안=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