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해외 영토 넓힌다] “소를 승용차로 바꿨다”… 현대차, 美시장 공략 가속도
입력 2011-01-05 01:14
(1) 현대·기아자동차 미국 현지공장을 가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생산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출 일변도 해외진출 전략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고 무역장벽을 극복하려는 글로벌 경영전략의 일환이다. 이들 해외공장들은 물류 및 인건비 절감과 현지화를 통해 해외시장 공략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진출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가는 기업들의 현장 모습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따뜻한 남부의 겨울 날씨로는 드물게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의 현대자동차 현지공장을 찾았다. 현지인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혹한’ 수준이다. 그러나 공장은 밀려 있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질적인 도약’ 성공=12대의 조립로봇이 분주하게 앞뒤, 옆으로 움직이면서 모듈(부품의 집합체)을 나르는 차체 조립공정 앞에 다다르자 안내를 맡은 김영일 인사·홍보담당 부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김 부장은 “한꺼번에 자동차의 핵심적 내장을 심는 공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봇이 자체 지능으로 차체 종류를 인식해 해당 차종의 모듈을 받아 장착한다”면서 “이 보디(차체) 라인이 최대 4개 차종을 동시생산 가능토록 하는 혼류생산 공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성공신화가 ‘가격대비 합리적 차(The car that makes sense)’에서 출발했다면 이제 쏘나타 싼타페 제네시스는 질적인 도약을 실현하고 있다. 구호도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y)’으로 업데이트됐다.
미국 내 판매차량의 평균가격이 1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현대는 ‘값싼 차’ 이미지를 탈피하고 동급 최고 연비·안전도·재구매 의사 등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신형 쏘나타 가격은 도요타의 동급 캠리와 비슷하다. 쏘나타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가 실시한 온라인 독자투표에서 절반 가까운 48%의 지지를 받아 ‘2011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에서 53만6000대(잠정추계치)를 팔았다. 1∼11월 판매고 기준 시장점유율은 4.7%. 기아자동차와 합쳐서 7.8%다. 닛산과 함께 6위에 올랐다. 전 세계 자동차의 각축장인 미국에서 지난해 새로 판매된 차 13대 중 한 대가 한국 차인 셈이다.
◇작업장 기율, 공정의 혁신=지난해 현대·기아차 미국 현지공장 약진의 바탕은 공정의 혁신, 작업장과 노동의 유연성이다. 국내공장에서는 생산라인의 차종을 변경하려면 노동조합의 사실상 동의가 필요하지만 노조가 없는 이곳에서는 차종변경과 인력의 교체투입이 언제든 자유롭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쏘렌토를 만드는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은 지난해부터 현대의 SUV 싼타페도 함께 만들고 있다. 현대차 한상호 부장은 “차종마다 생산라인이 다른 울산공장과 달리 미국 현지공장에서는 한 라인에서 2개 이상 차종의 혼류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대차 몽고메리 공장은 YF쏘나타와 아반떼 두 차종을 생산하고 지난해 생산량 목표인 30만대를 돌파해 30만500대를 출고했다.
앨라배마와 이웃한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의 기아차 현지공장에서도 생산라인의 현지인 직원들은 시종 진지한 자세로 일했다. 김근식 부사장은 “근속 2년 미만 근로자의 연봉이 3만5000달러로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라면서 “월 100달러의 근태수당과 작업기율을 정착시켜 이제는 지각이나 결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동행한 명지대 이종훈 교수는 “미국 노동자들의 표정이 활기찼고 일에 집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말했다. 이런 작업기율은 근로자의 활발한 신고정신도 한몫하고 있다. 김영일 부장은 “일을 잘하는 한 직원이 안전수칙을 어겼다는 고발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해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유연성의 확보=현대차는 울산공장에서 최근 논란이 된 사내하청 형태의 파견근로자를 미국 현지공장에서도 쓰고 있다. 기아차 웨스트포인트 공장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각각 전체 생산직의 9%와 7%를 파견근로자로 충원했다. 미국은 제조업 생산라인의 파견근로가 가능하고, 전문적인 인력 공급업체가 발달해 있다. 현대차 몽고메리 공장 관계자는 “파견업체의 전문성이 매우 높아 정규직과 파견근로자 간 시간당 급여 차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기아차 웨스트포인트 공장은 지난해 생산목표 15만8000대를 달성했고 올해는 26만대 달성을 위해 현재 2교대제를 3교대제로 개편하고 주말특근도 확대할 예정이다.
웨스트포인트와 몽고메리 공장에서는 현지인 팀장 1명이 10명의 팀원을 관리한다. 아침에 팀장이 당일 작업량과 전날 지적사항을 전달하고 작업 지시를 한다. 이들 팀장과 30명당 1명인 현지인 반장이 기초 노무관리를 한다. 그러나 주요 의사결정은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이 팀장들과 협의해 결론을 내린다.
이런 현지화 노력과 공정 혁신 및 노동 유연성이 급속 성장 비결이다. 물론 최신 공장이란 이유도 있지만,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의 편성효율(인력운용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은 92%로 현대차 울산공장의 65%를 압도한다. 차량 1대당 생산시간을 말하는 생산성(HPV)이 각각 16, 19로 울산공장의 32.8보다 월등하다.
몽고메리(미 앨라배마주)·웨스트포인트(미 조지아주)=임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