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가하게 개헌카드 꺼낼 때 아니다

입력 2011-01-04 17:41

여권 지도부가 또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3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의 회동에서 “새해에 개헌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원내대표도 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개헌 논의를) 올해 초부터 시작해 6월 전까지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을 고리로 여권뿐 아니라 야권 인사들과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개헌의 산물인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 헌법은 21세기 현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대통령 1인에의 과도한 권력 집중과 짧은 임기에 따른 장기 국책사업 차질 등 단점이 있기 때문에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개헌은 여권 지도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며, 각 정파가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수개월 사이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국민 3분의 2 정도가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 개헌 적극 지지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개헌보다 국가안보나 경제가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와 제1야당 민주당도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여권 주류 측이 정략적 계산을 갖고 개헌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지도부가 아무리 개헌을 부르짖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특히 주요 연설 때마다 개헌, 혹은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해 온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특별연설에서 이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가 없는 올해야말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정치문제로 논란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여론을 정확히 읽은 결과다. 그런데 여권 지도부는 왜 연초부터 개헌에 불을 지피고 있는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의혹을 받을 만도 하다. 개헌은 국민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논의를 유보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 협조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