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잘 알만한 정치인의 돌출 행동
입력 2011-01-04 17:40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4일 김정일 면담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한국 국민의 뜻”을 전하고 “남북 간에 끊어진 대화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말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 대화를 강조했고, 북한 신년 공동사설도 남북 대화와 협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며 자신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을 무시한 정 최고위원의 돌출적인 김정일 면담 요구는 과잉 행동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작년 말에도 개성공단 실태 파악과 안전대책 마련을 위해 방북하겠다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실현이 어려울 줄 뻔히 알면서도 정치적 매명(賣名)을 노리는 것은 야당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치인의 격에 맞지 않는 행위다.
더욱이 서한에서 “김정일 위원장께서 저의 방북 요청에 대해 다시 한번 통 크게 결단”해 달라고 한 것은 도발 책임자에게 애걸하는 듯한 비굴한 언사다. “서해를 육지의 개성공단처럼 만들자”는 주장도 북방한계선(NLL)을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북한의 의도에 호응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던 2005년 6월 김정일과 면담한 정 최고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언급하며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천명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은 김 위원장과 저의 소통의 결과가 크게 작용해 이루어진 성과”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때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불신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면서 “북·미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이 이뤄진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김 위원장 말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동족에 대해 핵 위협을 일삼고 있다. 뜬금없이 대화와 협력을 주장한 북한 신년사설은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정치인과 단체들이 남남갈등을 키우는 상황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