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한반도 폭탄 돌리기
입력 2011-01-04 17:38
현 한반도 정세는 마치 ‘폭탄 돌리기’가 진행 중인 형국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돌리는 이 폭탄 돌리기 게임은 겉으로 보기엔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다. 폭탄 돌리기는 작금의 ‘한반도 정세 불안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서 출발해 결국 ‘누가 풀어야 하느냐’로 귀결된다.
우선 중국. 한반도 불안의 원인을 미국의 동북아 정책, 한국의 대북 정책에 있다고 보면서 결국 미국에 대해 북한과 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움직여야만 한반도 정세가 안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시쳇말로 미국에 ‘퉁치는’ 것이다. 다음 미국. 불량국가인 북한이 이렇게 도발하도록 내버려둔 중국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북한의 행동 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 무엇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북이 먼저 뭔가를 도모해야만 한반도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자신들로부터 멀찌감치 숙제를 던져 놓은 것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깡패 전략’이다. 더 잃을 것도 없으니 그저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고, 자신들과 대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의 잘못은 없다. 남한은? 북한 변화가 최우선이고, 이게 없는 한 남북관계 개선은 없다.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지만 대북 강경 기조가 주류다.
관련 4개국 모두 상대방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숙제만 던져 놓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요동쳤던 한반도 정세는 미·중의 개입과 남북한의 자제로 조금씩 가라앉는 분위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상대방이 먼저 변화를 보이고,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개선점이 찾아지거나 해법이 도출되는 구조다. 바꿔 말하면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떤 해법도 마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간인까지 살상한 북한의 만행과는 별도로 한반도 정세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한반도 폭탄 돌리기의 고착화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남한이다. 현 상태가 최적은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 도발만 없게끔 억제하며 ‘불안정한 안정’으로 상황 관리를 하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언제라도 적절한 개입을 할 수 있어 한반도나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 유지 측면에서는 괜찮은 국면일 수도 있다. 북한은 더 잃을 게 없는 불량국가다. 상식이나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권만 유지되면 그것으로 족한 그들이다. 우리는 다르다. 끝없는 안보 리스크, 전쟁에 대한 공포,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제 경제가 남한을 보는 시각, 여기에 남한 내 여론을 극단적으로 양분시키는 효과까지….
선진국 진입 문턱에 서 있는 우리로선 이런 상황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 폭탄 돌리기 구조를 남한이 타파함으로써 한반도 상황 관리의 주도권을 좀더 확대할 수 있는 해법은 있다고 본다. 마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대선과 시진핑 부주석으로의 정권 이양이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 때문에 2011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점수를 쌓아야 한다. 한반도가 불안해지면 그들은 점수를 잃는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한반도에 대한 획기적 해법이 나올 리 없지만 최소한 두 사람의 입에서 한반도 안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함께 해법에 대한 방향 설정은 나와야 한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력에 달렸다. 한반도 폭탄 돌리기 구조가 고착화돼서는 아주 곤란하다. 남한이 먼저 주도하고 변화함으로써 폭탄 돌리기 구조를 깨자는 주장에 한국 내 대북 강경파들이나 일부 보수 세력이 강력히 반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국민 여론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좀더 쿨(cool)하게 볼 필요가 있다. 추가 도발 시 ‘도발 원점 제거’라는 강력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선진국 진입을 위해, 국익을 위해 남는 장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