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 다른 교회 출석 시대… ‘같은 교회 나가야 한다’는 가치관 변화
입력 2011-01-04 09:28
서울에 사는 대학생 A씨 등 가족은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2010년을 마감하고 새해를 맞았다. 그런데 예배를 드린 교회는 모두 달랐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A씨는 대학부가 큰 ㄱ교회, 어머니는 목사님 설교가 좋다고 소문 난 ㄴ교회,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집 근처 ㄷ교회에 나가고 아버지는 지방의 ㄹ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 후 대학부 친구들과 찜질방에서 밤샘을 했다는 A씨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데 특별한 절기를 가족들과 떨어져 맞을 때면 씁쓸하다”면서도 “각자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가족 단위로 같은 교회에 나가는 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사는 지역을 넘어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교회를 골라 다닐 수 있는 요즘, 어느덧 ‘가족은 같은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개념조차 희미해져 있다. 그러나 가족 간, 세대 간에 신앙적 괴리가 커져가는 현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들도 나온다.
◇왜 뿔뿔이 흩어지나=가족이 흩어지는 현상은 대개 자녀가 장성해 청년 위주의 교회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직장인 권모(32·여)씨는 최근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 한 대형교회에 등록했다. 첫째 이유는 “대형교회는 청년부가 활발한 한편 나 개인이 지는 부담은 크지 않아 좋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가 ‘고루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본적인 신앙관은 같겠지요. 그렇지만 설교 때 나오는 정치 얘기, 가부장적 가치관에는 공감할 수 없어요. 청년부만 따로 드리는 예배에서는 그런 불만이 안 생기죠.”
기성세대 중에도 ‘대형교회 쏠림 현상’은 일반화되고 있다. 시설 및 프로그램의 장점과 함께 ‘익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이유, 설교가 더 재미있고 은혜롭다는 이유 등으로 지역을 떠나 큰 교회로 옮겨가는 식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선교훈련원 전호영 목사는 “가족들이 더 이상 좁은 지역 내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는 시대에 가족 단위 신앙을 지키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특히 지방으로 가면 목회자들조차도 장성한 자녀가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또래집단’을 중시하는 청소년들이 친구를 따라 교회를 옮기는 현상까지 더해져 ‘뿔뿔이 신앙생활’은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장점과 단점=목회자 및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정재영 교수는 “그나마 우리나라는 가족 내 종교 일치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면서 “복음의 본질만 같다면 각자 개인의 영적·사회적 필요에 부합하는 교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편이 신앙을 지키기에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평했다.
청년 위주 교회에서 13년간 사역했던 안양 하늘문교회 청년부 담당 최대복 목사는 “장년 위주 교회들은 청년들을 훈련하고 비전을 심어주는 부분이 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청년들이 부모 세대의 교회를 떠나는 현상은 자신의 신앙 앞에 철저해지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단점도 적지 않다. 정 교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의 신앙적 유대감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문화 전공 임성빈 교수는 “교회를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상,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와 이웃의 유익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데 신앙생활에서도 ‘나’를 가장 앞에 놓는 풍조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중소형 교회들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리라는 지적도 있다.
◇세대 통합을 위한 노력=교회 안에 여러 세대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은 몇 년 전부터 ‘교회 내, 가정 내 세대간 갈등 넘어서기’를 위한 아이디어들을 개발, 제안해 오고 있다. 올해는 여름수련회 가족 단위로 기획하기, 가정의 달 5월에 기독교 영화 및 뮤지컬 상연 등 세대 통합을 위한 프로그램 만들기, 교회 절기에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가족 단위 예배 보급하기 등을 제시한다.
이 프로그램을 이미 도입한 교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영락교회는 지난해부터 가족 캠프를 실시하고 있으며 극장을 빌려 가족 전체를 위한 영화를 상영한 일도 있다. 명성교회도 지난해부터 매주 토요일을 온 가족이 손잡고 새벽예배를 드리는 날로 정했으며 올해는 특히 신년예배부터 “고3 등 청소년·청년 자녀들과 함께 참여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세대 통합을 비전으로 내세워 거듭난 교회도 있다. 동두천동성교회는 장년 성도 250명 정도가 출석하는 지역 기반의 교회였다. 그러다 2002년 김정현 목사가 부임한 이후 “성도들의 자녀부터 교회로 불러내자”는 모토 아래 청년부와 중·고등부를 대폭 지원한 결과 현재는 장년 1300여명, 청년 3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지금 젊은 세대도 곧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면서 “교회가 세대 통합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황세원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