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수지 (8) 우편으로 온 100달러… 간신히 대학 등록

입력 2011-01-04 17:49


대입원서 접수철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내게 이화여대 영문과를 가라고 권하셨다. 교장 선생님도 이대 영문과를 가든지 서울대 외교학과를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간호학과를 가겠다는 내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원서를 보냈는데 내 원서만 아직 남아 있었다.

다시 교장실로 불려갔다.

“내가 오랫동안 교장 생활을 했지만 너처럼 고집 센 아이는 처음 봤다. 이게 다 너의 장래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저는 어려서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나의 고집에 결국 교장 선생님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며 선생님 자가용에 태워 주시며 빨리 접수하라고 했다. 나는 가까스로 이화여대에 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1학년은 장학금 혜택이 없다고 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합격통지를 받은 후 3일 안에 등록금을 내고 입학등록을 마쳐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집에서는 내가 대학에 간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등록 마감일 오후, 우체부가 집에 찾아와 내 이름을 불렀다.

“김수지씨, 편지 왔어요.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

당시 국제우편은 등기로 보내왔기 때문에 도장이 필요했다. ‘누가 내게 국제우편을 보냈지?’

발신자를 보니 미국의 벨로씨 부부가 보낸 편지였다. 유네스코와 숙명여고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아동미술전람회에서 벨로씨 부인이 심사한 것이 계기가 돼 우리 학교 미술시간에 데생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영어 선생님이 부재중이라 내가 통역을 했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분 집에 가끔 놀러 가곤 했다. 두 분은 60세가 넘었지만 자녀가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두 분이 갑자기 내게 편지를 보내 온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편지 봉투를 뜯는데 100달러짜리 수표가 봉투 안에서 뚝 떨어졌다.

“수지, 지금쯤은 네가 원하던 간호학교에 들어갔겠지?”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학에 들어가면 용돈이 필요할 테니까 쓰라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당시 100달러는 용돈 정도가 아니라 등록금을 내고도 남을 만큼 큰 돈이었다. 나는 수표를 들고 서대문의 조흥은행으로 마구 뛰어갔다. 그날 오후 5시가 등록금 납부 마감시간이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이 수표를 보더니 이대로는 바꿔 줄 수 없다며 한국은행으로 가 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곳 직원도 수표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추심하는 데 최소 한 달이 걸린다는 설명에, 나는 은행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안 된다는 직원을 뒤로하고 나는 은행장실 문을 왈칵 열고 들어갔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 사정은 알겠지만 아무리 급해도 추심을 하지 않고 돈을 줄 수는 없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데 은행장이 웃으며 말했다.

“대신 내가 학생에게 먼저 돈을 줄 테니 나중에 추심이 되면 그때 갚도록 해요.”

그는 빳빳한 돈 13만환을 봉투에 담아 내게 줬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그 돈을 품에 안고 다시 서대문까지 달려갔고, 숨을 헉헉거리며 간신히 마감시간 안에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입학금을 내고 나니 3만8000환 정도가 남았다. 그걸로 교과서를 사고 입학식에서 입을 포플린 원피스 한 벌까지 맞췄다. 나는 이 원피스를 12년 동안 입고 다녔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