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졸병들을 위한 軍 개혁
입력 2011-01-03 17:47
연평도로 배치 받은 어느 해병 신병은 화장실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사지(死地)에 간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병도 곧 철모에 불이 붙은 것도 모르고 북한군에 대응 사격을 한 임준영 상병처럼 용감한 해병이 될 것으로 믿는다. 마(麻)밭에 심은 쑥이 곧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방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형 군대’를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각 군 참모본부를 사령부로 개편해 군정과 군령을 일원화하고 합동군사령부를 두어 육·해·공 합동작전을 맡긴다는 것이다. 군 상부구조 개혁안은 군종 간 칸막이와 군 관료주의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적잖은 시간을 들인 뒤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만들 것이다.
당장 불똥이 튄 곳은 올해 입대하는 육군 신병들이다. 이달부터 신병 교육기간이 작년까지의 5주에서 8주로 늘어났고 토요일에도 훈련을 한다. 국방개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은 작년 말 “현재의 한국군으로는 전쟁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면 특전사와 해병대만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한심한 이야기가 전문가들에게서 나온다. 징병제 단기사병이 군의 주력인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병제로 정병(精兵)을 지향하는 게 정답이지만 병력수가 줄어들면 국민이 불안해한다. 결국 징집병 훈련을 강화하는 것으로 낙착되는 게 현실이다.
하이테크 시대에 재래식 훈련
신병 훈련을 강화한들 실질 전력에 도움이 될까. 훈련소에서 늘어난 3주는 기존 과목 중 개인전투력에 직결되는 개인화기와 각개전투 훈련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보병 교육 프로그램이다. 신병의 절대 다수는 보병으로 배치되는 데다 새로 준비한 교육 프로그램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전의 변화된 양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신병훈련 프로그램은 30년 전을 답보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보듯 지상전의 주역은 보병이 아니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포병이다. 미 육군은 공격력 방어력 기동성 삼박자를 갖춘 기갑부대와 근접항공지원을 포병에 곁들이는 것으로 지상전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 6·25 전쟁 후 보병을 대폭 감축했다. 이것이 베트남전쟁에서 고전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근접전투가 많은 게릴라전에서는 보병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게 없었다. 휴대용 대전차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개발로 전투력이 강화된 것도 보병의 부활을 촉진했다. 보병의 영역은 하늘로도 뻗쳐 공중강습 보병으로 기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병의 무거운 배낭 무게를 덜어줄 착용형 로봇도 개발되고 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까지 휴대용 미사일을 사용하는 시대에 우리 신병들은 하이테크와는 인연이 없는 재래식 보병으로 키워지고 있다. 밥 먹고 훈련만 하면 되는 훈련소 시절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자대에 배치되고 나면 훈련 반 사역 반이 일반적이다. 만약 이들이 유급병이라면 이렇게 값싸게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병 명줄 쥔 장교 재교육해야
6·25 전쟁에서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압록강까지 북진하고 다시 중공군에 밀린 롤러코스터 경험보다 휴전선 부근에서 전선이 교착돼 장기간 고지 점령전을 벌인 게 우리 육군의 전쟁 원체험(原體驗)이 아닐까 한다. 원체험은 훈련과 작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앞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현재의 무기체계로 보아 해·공군력에 의한 속전속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지를 점령하는 것보다는 잔적 소탕을 위해 게릴라전이나 시가전을 상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부대전술과 개인전술을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한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능력과 인격에 대해 동물적으로 감지한다. 목숨이 그의 지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기는 전투력을 좌우한다. 병들만 쥐어짤 게 아니다. 장교의 능력을 키우는 일은 신병교육 몇 주 늘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