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종회] 주춧돌을 놓은 행복

입력 2011-01-03 17:38


“새해에는 사람과 예술을 함께 키우는 자리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예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한 시골 출신 학생이 시 쓰기에 빠져 낙제를 했다. 2학년으로 진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돼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 쓰기는 크게 성과가 있어 그해 겨울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을 했다. 그로서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형국이었지만, 학교를 그만두면 창작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고심 끝에 그는 그 대학 총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어디 대학의 구중심처가 쉽게 개방될 리 있을까. 가까스로 비서실을 통과해 총장을 만났다. 초라한 몰골에 제대로 상황을 설명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총장은, 정문 입구에 신춘문예 당선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노라고,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노라고 짧고 흔쾌하게 말했다. 단 한마디도 왜 그렇게 학점 관리를 잘못했느냐고 묻지 않았고,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말도 없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렵게 스스로도 흡족치 못한 답변을 마치고 나온 그는, 세월이 지나 이름 있는 시인이요, 번역가이며 가장 전파력이 강한 출판편집자가 됐다. 한편으로는 인도의 평원을 방랑하며 라즈니쉬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개척한 명상가가 됐다. 불문곡직 찾아온 그를 맞아 삶의 근본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그분은 병석이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

두 권의 시집 모두가 판매량 100만 권을 넘기고 그에 준하는 번역서가 허다한 시인 류시화의 실화이다. 그의 총장은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 박사였다. 류시화는 자기 같았으면 틀림없이 한두 마디라도 질책하는 잔소리를 했을 터인데, 그 절차가 완전히 생략됐으며, 그때의 감동이 일생 가슴에 남았다고 술회했다. 그분은 짧은 시간에 어린 학생을 두고 일상의 미숙을 탓하기보다 예술적 가능성을 북돋워주는 스승이었다.

한 뛰어난 시인의 탄생에는 사람 만들기의 본질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투시하는 혜안이 잠복해 있었다. 문화예술의 생성이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에 미리 준비된 원인행위를 투자하는 것이어서 때로는 상식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과정이 개재된다. 그렇게 해서 수발(秀拔)한 예술을 추수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와 같은 각고면려 없이 그만한 예술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 분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생동하는 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근대의 한국 대학들은 여러 경로로 부하되는 대학평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수많은 평가지표가 주어져 있으나 교육이 이뤄지는 개별 학과에는 인정받는 논문의 숫자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와 거리가 먼 창작예술 분야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도외시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했다. 이렇게 해서는 균형 있는 교육, 미래를 유념하는 교육이 될 수 없다. 인간의 내부에 숨은 영혼을 발양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예술 폄하를 조장하는 이러한 풍조는 주의 깊게 재검토돼야 옳다.

비단 대학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는 삶과 인간의 근원에 대한 탐색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구조의 지원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교육의 백년대계를 운위하는 정부 당국과 관련 공공기관에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지 않고서는 아무리 재질이 좋은 대들보를 준비했다 할지라도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없는 바와 같다.

지난해 필자는 류시화를 포함한 7명의 대중문화 ‘영웅’의 이야기를 기록한 ‘대중문화와 영웅신화’를 상재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눈물겨운 경로를 따라 오늘의 영광에 이르렀으나, 각기의 고비에는 모두 유사한 ‘조영식 총장’이 있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 또는 여력이 닿는 우리 각자가 그렇게 사람과 예술을 함께 키우는, 그 소중한 기초를 다지는 행복한 자리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