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통령의 연설과 회견

입력 2011-01-03 17:37

미국에서 대통령 기자회견은 1913년 우드로 윌슨 때 시작됐다. 윌슨은 집무실로 기자들을 불러 회견을 했으나 자신의 발언이 직접 인용되는 것을 금했다. 언론의 우호적 보도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오프더 레코드(비보도) 기자간담회였다고 해야겠다. 기자들과의 대화를 가장 즐긴 대통령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다. 그는 1933년부터 12년간 재임하면서 무려 1023번이나 회견을 했다. 역시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현대적 의미의 기자회견 모델을 만든 대통령은 1961년 TV로 중계되는 가운데 회견을 가진 존 F 케네디다. 2년10개월 재임하는 동안 63번 회견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이 12년 재임기간 중 104번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부분 6·25 전후 집권 초반기에 이뤄졌으며, 장기 독재체제가 구축되면서는 언론인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TV로 중계되는 기자회견은 박정희 대통령 때 생겼다. 연두 기자회견이라고도 불리는 신년 기자회견은 1970년대에 정착됐다.

언론과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했던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신년 회견만은 거의 빠짐없이 했다. 언변이 뛰어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은근히 즐긴 측면이 있다. 신년 회견과 취임 기념일 회견은 필수였고, 외국 방문 중에도 회견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신년 특별연설을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한 것이 아니라 200자 원고지 40장 분량의 연설문을 약 26분 동안 읽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취임 후 한 번도 신년 회견을 가진 적이 없다. 올해처럼 연설로 대신했다. 외국 방문 때도 회견을 하지 않는다.

회견의 경우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느라 국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점을 기자들이 대신 물어주는 회견이 더 유용하다. 연설은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어서 소통 효과가 제한적이다.

백악관 취재의 산증인인 헬렌 토머스(90)는 “대통령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이 한번쯤 새겨들을 만한 얘기라 생각된다. 다음달 25일 취임 3주년 때는 연설 대신 회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