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훈련받고 파키스탄에 교회 25곳 세운 알타프 칸 목사 “대홍수 구호 영향, 기독교 호감 급상승”
입력 2011-01-03 18:08
“지난해 중반부터 파키스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기독교에 호의적입니다. 8월초 대홍수 이후 믿을 곳은 알라신도, 정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려움에 처해 보니 실제 도움은 NGO가 주고, 모두 기독교단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구호품을 받으면서 복음도 듣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개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에 교회 25곳을 세운 현지인 알타프 칸(55·Altaf Khan) 목사가 최근 한국을 방문, 최근 달라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파키스탄은 100여년 만에 내린 이번 폭우로 1600여명이 사망하고, 200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는 노방전도 사역을 하는 ‘그레이스 앤 가스펠선교회’ 대표다. 또 파키스탄 기독실업인회(CBMC) 회장이다. 이번에는 독일의 한 기독재단의 파키스탄 대표로 한국을 찾았다. 이 재단은 기독교인이 된 무슬림의 간증을 책으로 펴내 왔으며 한국 사역도 준비 중이다. 그는 이 사역을 구체화하기 위한 협력세미나에서 통역을 맡았다.
그가 세운 교회는 펀자브 주 파이살라바드 지역에 집중돼 있다. 성도는 8000명이 넘는다. 주로 길거리에서 노방전도로 맺은 열매다. 아직은 힌두교에서 개종한 이들이 다수다. 하지만 최근에 무슬림에서 개종한 이들이 여럿 합류했다.
“지난 20년간 목숨을 내놓고 무슬림에게 전도했지만 겨우 20명 세례 주는 데 그쳤어요. 그러나 이번 재해 이후 몇 달간 32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종교를 바꾸면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이곳에서 이것은 기적입니다.”
파키스탄에서의 세례는 죽어도 좋다는 의미다. 세례를 받는 이, 주는 이 모두 위험하다. 그에게 세례 받은 한 30세 청년은 아버지에게 총격을 당했다. 다행히 맞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에도 청년은 성경책을 읽었고 이를 안 아버지는 청년의 아침 식사에 독약을 탔다. 청년은 등교하자마자 쓰러졌고, 독극물을 의심한 교수의 빠른 처치로 죽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이 청년이 머물던 기숙사에 깡패를 보내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칸 목사는 “아버지가 아들의 수프에 독약을 타는 사람들이 무슬림”이라며 “같은 무슬림들도 이 같은 무슬림의 폭력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요즘 젊은 무슬림들은 그렇게 맹목적이지 않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미국 햄버거 먹지 말라고 하면 ‘피식’ 웃어요. 그만큼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는 거예요. 이들이 커서 나라의 주역이 되면 선교를 막는 장벽은 훨씬 낮아질 것입니다.”
칸 목사는 한국교회가 훈련, 파송한 선교사로 크게 성공한 경우다. 그는 1981년 아세아연합신대원의 장학금 제도를 통해 명지대 무역대학원과 총신대 신대원을 다녔다. 파키스탄 장로교단의 전 총회장인 그의 아버지와 한 선교단체에서 사역 중인 삼촌의 영향이 컸다.
많은 한국교회가 도왔다. 그는 “그동안 학업과 목회, 선교에 후원해주신 한영교회, 청담교회, 울산대광교회 등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과 결혼도 했다. 현지에서 동역 중이다.
현재는 파키스탄에 다목적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공식어, 사투리 등 26개 언어가 사용된다. 각 언어별 선교사가 필요하며 센터가 이들 선교사 훈련을 맡게 될 예정이다.
또 케이블TV를 통한 선교 확대도 기도 제목이다. “각 종교별 채널이 운영되는데, 현재는 설교를 1시간만 내보내요.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시간을 더 늘려야 합니다. 한국 성도들의 기도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cafe.naver.com/mediators)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