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2)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입력 2011-01-03 21:17


“도서관, 책을 넘어 다문화가정의 사랑방 역할할 것”

김수연(64)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작은도서관) 대표가 한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던 시절, 그에게 책은 ‘기삿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시 책상 위에는 매일 수십 권씩 책이 쌓였다. 산적한 책을 볼 때면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김 대표는 1987년 불의의 사고로 여섯 살이던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 다 읽은 책을 나눠보는 ‘책 나누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책을 읽어달라”는 생전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던 그의 맘속에 책을 통해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게 책은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아들에게 못 다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도구였다.

김 대표는 사재를 털어 ‘책 나누기 운동’을 벌이다 91년부터 도서관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국 233곳에 도서관을 지었다. 서울 논현동 작은도서관 사무실에서 3일 만난 김 대표는 “기부라고 하면 보육원 같은 곳에 기부금을 내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물질적 결핍 외에 문화적 결핍을 해소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20년 세월

김 대표가 도서관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책 나누기 운동’을 좀 더 확장시켜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산간벽지와 섬 마을에 도서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생각한 도서관의 최적 입지는 학교였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제게 학교란 공간은 마을의 중심이었어요. 운동회는 물론이고 이런 저런 마을잔치도 모두 학교에서 열렸습니다. 학교에 도서관을 만들면 많은 사람이 책을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른바 ‘생활 밀착형 도서관’을 세울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막상 도서관을 지으려 하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학교를 찾아 취지를 설명해도 문전박대 당하는 일이 잦았다. 책 대신 현금을 보내달라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책장수 취급을 당했다. 그는 “책을 팔기 위해 도서관 짓겠다는 얘기를 미끼로 던지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도서관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교사들은 “도서관 때문에 일거리가 느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고, 주민들은 “지금까지 잘살았는데 도서관이 왜 필요하냐”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발로 뛰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면 마을회관이나 교회를 방문했다. 시골 장터, 등산로를 찾아 주민을 만났다. 취지를 설명하는 포켓북도 만들어 만나는 사람에게 쥐어줬다.

이런 노력 끝에 91년 전북 남원 원천마을에 첫 도서관이 들어섰다. 이후 232곳에 도서관이 세워졌다. 책을 통해 나눔의 뜻을 나누려는 의지가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작은도서관에 기부금을 보내온 사람은 432명에 달한다. 모금액은 29억여원이다. 기부 받은 책은 2000권이 넘는다.

책을 통해 나눔의 뜻을 펼치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는 도서관 만들기 운동 외에도 여러 모습으로 실현됐다. 그중 하나가 이동도서관 ‘책 읽는 버스’다. 34인승과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버스 4대는 공공도서관이 없는 산간벽지를 돌며 책 읽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의 꿈

김 대표의 요즘 관심사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 재미를 처음 깨닫게 되는 과정이 없어 언어능력이 떨어지고 학교 적응에도 어려움이 많다. 김 대표는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에 도서관을 세우고, 도서관이 이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만드는 도서관은 이주여성이 아이와 함께 책을 보러 왔다가 마을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랑방의 개념입니다. 저희는 다문화가정 부모와 아이들이 도서관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현지어 도서를 지원할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버스를 한 대 사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책과 이주여성의 모국어로 쓴 책을 반반씩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는 희망을 실천하기 위한 첫 단계로 이달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다문화가정을 위한 ‘작은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우선 외국인근로자가 많은 공장지대인 인천, 경기도 시흥·안산, 울산과 농촌 지역인 전남 순천, 전북 완주, 강원도 강릉 등 10개 지역에 도서관을 만들 계획이다.

김 대표는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도서관을 짓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에 있던 도서관 운영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있는 도서관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농촌 학교에 도서관을 조성해주는 사업만 했지만 이제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