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부 광고였다고? 감쪽같네… 드라마·예능프로 간접광고로 은연중 정책홍보

입력 2011-01-02 18:50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정말 공무원처럼 얘기하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감(感)이 좋은 편이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간접 광고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는 기업체가 자사 상품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 부처도 예산을 투입해 예능·드라마 등 TV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SBS에서 방영 중인 20부작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협찬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폭행 위기에 빠진 김희원(최윤소 분)을 임종수(이필립 분)가 나타나 구해주는 내용이 방영됐다. 3분 정도 방송 분량에서 희원은 건물 출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에게 “금연구역이고 아이들도 있는데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되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시면서 왜 이렇게 당당하세요”라고 따지다가 위험에 빠진다. 때맞춰 나타난 종수가 완력으로 흡연남을 제압해 위기를 넘긴다. 흡연남은 망신만 당하고 황급히 사과한 뒤 사라진다.

복지부가 지난해 금연홍보 예산으로 책정한 281억원 중 1억5000만원을 투입해 드라마에 반영한 내용이다. 예전 같으면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공익광고나 포스터에 있을 법한 내용이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녹아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달 중순 종방을 앞둔 이 드라마에서 금연 정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 차례 간접광고가 나가기로 합의했지만 드라마 제작진이 몰입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며 나머지 분량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달 18일 방영됐던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녹색특집엔 환경부 예산 8000만원이 투입됐다. 멤버들은 세트를 위·아래층으로 나눠 만든 북극 호텔과 몰디브 리조트에서 휴양지 체험을 했다. 북극 호텔엔 몰디브 리조트에 설치된 에어컨의 실외기가 장착됐고 몰디브 리조트엔 북극 호텔의 배수관이 연결돼 각 층에서의 활동이 서로에게 순환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래층 사람들이 에너지를 펑펑 쓰면 위층의 얼음이 녹아 다시 아래층으로 물이 새는 장면이 연출됐다.

시청자들은 방송이 나간 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과 더불어 재미까지 부족함 없었다”며 호평했다. 간접광고임을 몰랐던 일부 시청자는 “환경부가 무한도전과 협의해 환경교육에 이 프로그램을 적극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방송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보도·시사·논평·토론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간접광고가 전면 허용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부는 “정부 정책을 은연중에 시청자의 머릿속에 주입하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오용되지 않는다면 전통적 홍보 방법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