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새해 계획 세우기

입력 2011-01-02 17:47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운다. 올해도 어김없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실행과 따로 노는 때가 많다. 이것은 비단 새해계획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장 보러 갈 때도 사야 할 물품들을 적어 놓지만, 막상 마켓에 도착해서는 그 목록을 책상에 두고 온 것을 발견하곤 한다. 잠시 가는 장보기도 그러한데, 하물며 1년이라는 장기계획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요원한 꿈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올해도 새해 계획을 세운다.

제법 오래된 ‘버켓 리스트(bucket list)’란 영화가 있다. 버켓 리스트란 생을 마감하기 전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 놓은 목록을 말한다. 암 병동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목록을 서로 나눈 후, 목록대로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이야기다. 세렝게티에서 사냥을 하고,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오토바이로 만리장성을 질주하고, 눈물이 날 때까지 웃고,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의 키스를 하나씩 실행해 나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름다운 소녀는 주인공과 이미 관계가 손상된 딸의 아이임을 알게 된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죽기 전에 해야 할 과제의 하이라이트는 끊어진 관계의 회복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고, 이것이 딸과의 손상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한 해를 계획할 때 나이도 고려해야 하겠다. 일본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라는 책에서 발달단계로 나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시했다. 10대에게는 미래가 없는 일을 하지 말고, 부모 품에서 벗어나야 하며, 토론과 연설을 즐기고, 평생 잊지 못할 자랑거리를 만들라고 권한다. 20대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을 찾으며, 현장에서 실패하는 경험을 맛보라고 충고한다. 반면 40, 50대에게는 과감하게 버릴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해 살 것, 그리고 느리게 살 것을 권한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사람처럼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해 나가면서도 하루하루의 맡겨진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조절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올해에는 일상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때때로 과감하게 일상에서 벗어나 삶이 지루하지도, 계속되는 흥분에 들뜨지도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올해는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상추와 쑥갓을 키울 것이며, 오랫동안 벼르던 성지순례도 계획에 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불편했던 관계들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미 인생의 후반기를 걷고 있는 사람으로 더 많은 것을 움켜쥐기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눌 것은 나누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고 한 해를 살기 원한다. 그래서 1년을 지낸 후 한 해를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참 잘 살았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