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뉴 밀레니엄 10년 후
입력 2011-01-02 17:51
2000년 1월 1일의 화두는 온통 ‘뉴밀레니엄’이었다. 현대(現代)라는 개념의 시점이 1900년대에서 2000년대로 옮겨지자 모두 20세기보다 21세기가 훨씬 더 나을 게 틀림없다며 법석을 떨었었다. ‘제너레이션X’ ‘포스트모던’ ‘인터넷 혁명’ 같은 말이 유행했고 모두들 앞으로의 미래가 조금 더 희망차 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새천년’이 그렇게도 지난 세기와 달라졌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제너레이션X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한 세대의 철없는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에서 1970년대 히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전쟁과 대결, 갈등과 폭압만 야기한 20세기적인 이성을 대체하겠다던 포스트모던의 사고방식은 아직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터넷 혁명도 생활을 편리하게 했지만 역시 지난 세기의 수많은 단점을 개선하는 데 역부족이다.
손안에 잡히는 만능기계 하나만으로 일하고 놀고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2010년 발(發) ‘스마트월드’도 조금 더 지나면 그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일상생활을 재미있게 만든 또 하나의 트렌드로 여겨질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의 시간은 여전히 20세기의 ‘유물’들이 지배해 왔다는 느낌이다.
지난해 거듭된 북한의 도발 공포는 정말 오래전부터 반복돼 온 실체였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반세기 전과 대동소이한 모습으로 화해나 양보엔 서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여전히 아귀다툼을 하며 민의(民意)의 전당이라는 국회의사당에서조차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팍팍한 생활의 주름이 펴지지 않고 미래조차 잘 보이지 않는 서민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30년 전 고3 학생들이 겪던 입시지옥은 지금 고3 학생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고, 아이들은 더 어린 나이 때부터 과외를 받아야 하게 됐을 뿐이다. 이처럼 개선되지 않은 게 많은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에게 반성하는 습관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최인훈은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고 20세기라는 코끼리가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 꼬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올해 첫 아침에도 어김없이 새 태양이 떴고 사람들은 또 희망을 품는다. 희망은 지난 일에서 우리 모두 고쳐야 할 것들을 곰곰이 찾아보고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해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새해의 희망은 공수표(空手票)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짜 근사한 21세기가 되지 않을까.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