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49) 토끼처럼 스마트하게

입력 2011-01-02 22:15


신묘년(辛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토끼띠로 토끼는 귀여운 생김새뿐 아니라 사람들과 친근해서 인간사와 연관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이지요. 토끼에 얽힌 숱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을 꼽으라면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는 중국의 고대 ‘항아(姮娥)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우리 역사에 토끼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구려 대조왕 25년으로 부여국에서 온 사신이 뿔 3개가 있는 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고 왕은 이들이 상서로운 짐승이라며 사면령을 내렸답니다. ‘삼국사기’의 ‘구토설화(龜兎說話)’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용왕의 딸이 병이 들어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낳는다고 해서 거북이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가는 구토설화는 판소리 ‘수궁가’로 발전했답니다.

용궁으로 들어간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나지요. 꾀 많은 토끼가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노라며 다시 가져오겠다고 속이는 대목에서는 박장대소가 나올 뿐입니다. 이 말에 속아 토끼를 놓쳐버린 거북이가 자살하려던 순간 도인(道人)의 도움으로 선약(仙藥)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결말은 두 동물을 통해 인간성의 결여를 풍자하는 것이지요.

가난했던 시절 토끼는 집안의 종잣돈 역할도 톡톡히 했답니다. 아이들은 토끼를 열심히 키워 중·고교 진학 때 학자금으로 썼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추운 겨울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와 목도리는 또 얼마나 유용한 생활필수품이었는지요. 토끼풀(클로버) 가운데 네잎은 행운을 선사하는 것으로 눈을 부릅뜨고 찾아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토끼와 관련된 사자성어도 여러 가지가 있답니다. 이 가운데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은 주인으로부터 한때 총애받던 사람도 쓸모가 없으면 결국에는 제거당한다는 의미로 주종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또 수주대토(守株待兎·나무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림)는 노력하지 않고 득을 보려하지 말라는 비유로 융통성 없이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지요. 영리한 토끼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산 정상까지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동화를 잘 아실 겁니다. 거북이의 느린 걸음을 업신여긴 토끼는 낮잠을 자는 게으름을 피우다 결국 경기에서 지고 마는 이야기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우화(寓話)이지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월 14일까지 새해맞이 ‘토끼 이야기’ 전이 열립니다. 토끼를 그린 옛그림, 토끼모양 노리개, 토끼털 목도리, 토끼와 삼족오, 토끼문양 수막새, 고전에 사용했던 토끼 삽화 초본 등 유물들을 선보입니다. 예로부터 생장(生長)과 번창,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듬뿍 받은 토끼처럼 스마트하고 행운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