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강순용 원로장로의 첫 개인전

입력 2011-01-02 15:00


지난해 자교감리교회 강순용 원로장로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 6시간 꼬박 앉아 작품을 그렸고, 그 결과물을 갖고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91세에 이룬 꿈같은 순간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 강 장로에게 새해란 감사요 설렘이다.

“아내는 나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고 떠났지. 하나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야.”

2005년 이후 강 장로의 감사 고백은 한결같다. 2004년 여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내를 향한 애틋함을 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날도 아내와 수요예배를 드리러 걸어가고 있었지. 내가 저만치 먼저 가서 벤치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 도착한 아내가 내 무릎에 쓰러지더니 영영 깨어나질 않았어.”

갑자기 아내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컸다.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믿음 좋은 아내와 결혼했기 때문이요, 몇 차례 사업의 위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아내의 기도 덕분이었다. 60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를 떠나보낸 강 장로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불러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삶의 의욕을 잃었다. 한번은 아들네와 함께 사는 아파트 19층에서 뛰어내릴까도 생각했다. 그 순간 ‘어이쿠, 내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헛했네. 이런 끔찍한 생각을?’이라며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때 떠오른 게 그림이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유학한 강 장로는 틈만 나면 도쿄 우에노공원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그림은 배운 적도 없고, 그려본 적도 없었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이러다 아내를 따라 죽지 싶었어. 그래서 차라리 그림을 그려보자고 다짐했지.”

하지만 85세의 할아버지를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몇 군데 전화를 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아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처음 붓을 잡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모든 슬픔이 사라졌다. 이내 강 장로는 제대로 그림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홍익대 미술디자인교육원과 대학원 미술실기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경기도 시흥시 자택에서 차를 몰거나 지하철 등을 타고 서울 강남교실로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홍익대 미술디자인교육대학원 총장상을 수상했고, 평화미술대전 및 아카데미미술대전에서도 특선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그림을 그린 지 6년 만에 개인전도 열었다. 조카인 난초 연구가 이경서씨가 촬영해온 한라산의 난 사진들을 보며 작품을 그렸다. 주로 동양화의 소재로 쓰이는 난이지만, 강 장로는 유화로 표현했다. 또 자신의 고향 제주도의 한라산, 초가집의 풍경도 담았다. 42점 중 대부분의 작품들을 판매했고, 수익금 일부는 교회 선교비로 헌금했다.

먼저 떠난 아내는 그동안 남편이 잊고 살았던 감성을 깨워줬다. 그 덕에 강 장로는 제2의 인생을 누구보다 기쁘게 살고 있다. “그림을 그리려고 세상을 보니, 온통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물뿐이었어.” 강 장로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실 강 장로는 지난해 작업을 하느라 약간 무리를 했는지, 새해 허리와 관절 통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다. 쉬는 동안 또 다른 작품 구상도 할 계획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몸이니까 천국 가는 그 날까지 건강하고 깨끗하게 간직하며 살아야지. 시력도 좋고, 귀도 잘 들려. 이빨도 내 것이라오. 겸손한 몸으로 더 열심히 그림을 배우려고. 어쩌면 올해엔 일본에서 2인전도 할지 몰라. 그저 감사할 뿐이야.” 92세란 나이를 잊고 사는 강 장로. 새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루기 위한 꿈에 그저 설렐 뿐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