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16 탑승기] 7㎞ 상공서 본 北 한뼘 거리… 긴장감이 몰려왔다
입력 2010-12-31 21:28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꿈꿔온 전투기 조종사, 탑승한다는 것만으로 설렘은 충분했다. 그것도 대한민국 공군 주력전투기 KF-16이라니.
전투기 탑승에 앞서 항공우주의료원에서 항공생리 훈련을 받았다. 항공생리 훈련은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훈련이다. 개개의 훈련이 모두 만만치 않았다. 지구 중력의 9배를 버티는 ‘9G(Gravity·중력) 가속도 체험’, 2만5000피트(약 7㎞) 상공의 상황에서 산소마스크를 벗고 글과 구구단을 쓰는 저압실 비행훈련, 비행착각훈련과 비상탈출 훈련까지.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중력가속도를 견디는 것이었다. 1G가 사람이 땅에 서 있을 때 느끼는 무게라면, 9G는 몸무게의 9배 중량이 몸을 짓누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석에 앉아 레버를 당겼다. 순식간이었다. 1G에서 9G로 바뀔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2초. 시야가 흐려지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숨은 가빠지고 손발의 모세혈관도 팽창되는 듯했다. “윽! 윽!” 정신을 차리기 위해 끊임없이 교관이 알려준 L1 호흡법(중력이 높아져 피가 하체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호흡법)을 하며 15초를 버텼다. 훈련을 마친 뒤 후유증은 한 주간 지속됐다. 발등과 손목에 실핏줄이 터지고 종종 속이 거북해 헛구역질도 났다.
2010년 마지막 날, 전투기 탑승자격을 받아 KF-16 전투기 초계비행을 취재하기 위해 충주 제19전투비행단에 도착했다. 미리 지급받은 조종복과, 헬멧, 중력의 압박을 완화시켜주는 G슈트,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전투기에 올랐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 뒤로 뉘어진 좌석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를 들고 비행한다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정비사들이 최종 점검을 마친 뒤 드디어 전투기 캐노피(조종석 뚜껑)가 닫혔다. 격납고를 빠져 나온 KF-16은 거대한 불기둥과 굉음을 쏟아내며 힘차게 활주로를 치고 올랐다.
KF-16 필승 편대는 동해안을 돌아 동부전선, 서부전선을 거쳐 서해 5도 북방한계선(NLL)까지 초계비행을 했다. 편대가 기수를 동쪽으로 돌리자 붉은 태양이 동해 위로 뜨거운 용광로처럼 장엄하게 떠올랐다. 설악산 대청봉을 지나 민간인 출입통제선 인근까지 비행하자 눈 덮인 금강산 자락이 보였다.
편대는 고도를 2만5000피트로 높여 동서로 이어진 155마일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초계비행 임무를 수행했다. 20분 뒤 편대는 기수를 NLL 방향으로 돌려 지난 11월 북한의 공격으로 포연에 휩싸였던 연평도 상공을 날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연평도는 북의 개머리반도와 한 뼘 거리도 안 돼 보였다.
“조국 영공은 이상 없습니다!” 헬멧으로 편대장 김동경(37) 소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소령은 “우리 공군은 대북억제 및 즉각 응징 전력으로서 대비태세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전투기 편대 조종사들과 함께 서해 5도를 뒤로 하고 기지로 귀환했다. 땅에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리면서 허리와 어깨가 저려 왔다. 고개를 들어 다시 바라본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아픔도 이내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서해 상공 KF-16=글·사진 이병주 기자 ds5ecc@kmib.co.kr